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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황제’ 이주일(본명 정주일)씨는 대중이 사회 지도층에 대해 느끼던 박탈감을 어루만져줬기 때문에 커다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이주일씨는 30대 후반의 진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밝혔듯이 ‘못생긴 용모’로 화려한 연예계에 데뷔했다.그에게는 소위 ‘빽’도 전무했다.학연이나 지연도 없이 오로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였다.당시군사 정권하에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지내던 대중은 억압과가난의 설움을 이주일이라는 못난이 스타 한 명을 통해 일부나마 보상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주일씨는 남달리 폭넓은 대인관계로 주변의 대소사를 일일이 챙겨주며 ‘큰 형’ 노릇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인생의 귀감이 됐다.축구감독박종환,가수 조용필,탤런트 이덕화 등과의 서민적인 우정도 대중에게 크게어필했다.그가 무명시절이던 77년 11월 전북 이리(현재 익산)역 폭발사건 때 소녀스타 하춘화를 사지에서 구해낸 일화는 연예계에 아직도 회자되는 영웅담이다.
92년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같은 정치판을 바꿔보겠다’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그는 ‘고향’인 무대로 복귀했다.
이주일씨는 지난 6월 월드컵 때 한국전이 열리면 어김없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경기장을 찾았다.연예계에 몸담고 있지만 남달리 축구에 대한 사랑이강했던 그는 언제 멈출지 모르는 숨에 대한 집착을 축구장에서 땀냄새를 맡는 것으로 달랬던 것 같다.
60년 문선대에서 MC로 활동하다 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데뷔했다.80년 2월 TBC TV(현 K2TV의 전신)의 코미디프로 ‘전원출발’에 단역으로 출연해 대사 하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더듬거리다가 ‘그러게나’를 ‘그러나게’로 잘못 발음한 게 의외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얻어내면서 코미디 황제 이주일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그후 그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등 자학적이고 엉뚱하면서도 사회풍자적인 유행어를 퍼뜨리며 인기가도를 질주했다.팝송 ‘수지 큐’에 맞춰 오른팔과 엉덩이를 흔들며 오리처럼 뒤뚱뒤뚱 걷는 ‘이주일춤’도 당시 어린이들이 누구나 따라할 정도로 크게 유행됐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등의 영화에 주인공을 맡았고 동명 가요도 취입하는 등 80년대 조용필과 함께 방송·연예계의 쌍두마차로 군림했었다.오랫동안 ‘코미디의 황제’로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받아온 배경에는 남다른 노력도 있었다.프랑스 미국 등 외국에서 코미디를공부하고 왔는가 하면 85년 소재 빈곤으로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제2의도약’을 위해 등록금 전액을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대학생 개인 스크립터를고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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