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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과 조용필의 관계

임시현, 2003-05-21 12: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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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과 조용필의 관계

                                                                     임시현(시인)

80년은 한 독재자가 심복에게 총맞아죽고 한 독재자가 총을 들고 장고처럼 나타난다. 그러면서 백성에게 정의사회구현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오월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몽둥이로 총으로 그 백성들을 쳐죽인다 그 와중에 조용필은 또 다른 왕국에 황제로 등극한다 암울한 시대 조용필은 여리고 슬픈 백성을 노래로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리하여 그시대 대머리 독재자와는 달리 요순시대의 왕처럼 노래의 선정을 베푼다

관계 [關係, relation] 는 어떠한 현상이 다른 현상에 미치는 영향 또는 교섭하는 것을 말한다. 넓은 뜻으로는 둘 이상의 현상을 어떤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경우, 이 대상들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간상에 병존하는 대상, 유사점이 있는 대상, 상호 모순되는 대상은 각각 공존·유사·모순이라는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각각 공존관계·유사관계·모순관계에 있다.

또한 관계에는 개념이나 판단 상호간의 논리적 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와 같은 사실상의 관계 등이 있다. 특수한 용법으로서, 칸트는 실체와 우유선(偶有性), 원인과 결과, 교호작용(交互作用)을 관계의 테두리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용 필은 80년의 공간에서 시대적 상황과 병존하며, 또한 시대적 상황과 유사하면서, 모순된 듯이 보여지는 관계가 교호한다.

80년대 조용필 그에게는 ‘가왕(歌王)’이란 영예로운 별칭이 붙는다. 아니 ‘가왕’만으로는 모자라니 ‘가황(歌皇)’이라 해야될지도 모르겠다. 80년 대이후 한국의 가요사는 그대로 조용필의 역사다. 그만큼 그는 넓고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히트곡 수를 센다는 것 자체가 ‘가왕’에게는 결례가 되고 콘서트나 앨범에서 지향하는 완벽을 찬양하는 것도 시답잖은 아부가 된다. 그냥 그는 가장 뛰어났던 가수로 기억한다는 것은 세종대왕을 깎아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80년대는 단연 조용필 황제의 아름다운 독재시대였다. 80년 <창밖의 여자>로 되돌아온 조용필은 <비련> <촛불> <고추잠자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로 위대한 탄생을 한다. 그는 로큰롤, 트로트, 댄스음악, 발라드, 퓨전 등에서부터 창과 민요라는 한국적 창 법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숙명인 양 다 받아들였다. ‘오빠부대’가 이때부터 가요한국왕국을 세운다.

사실상 그의 데뷔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던 조용필에게 그의 실질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는 80년의 활동재계는 그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음악이 어때야하는지를 자각하게된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아무리 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의 음악을 하나의 일직선상에 놓고 본다고 하면 상당히 많이 벗어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의 재등장은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음악의 정리와 락음악의 전면에로의 부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년배의 뮤지션들 대부분이 무대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게 되었지만 당시의 대중음악의 풍토였는지 아니면 한국 대중음악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일단 오버그라운드로 나서게 되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60-70년대의 락음악과는 동떨어진 음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락음악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재등장과 더불어 락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함으로써 반대의 경로를 통해 락음악을 대중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은 당시에 락음악의 전성기를 보내고 뉴웨이브 음악이 주도하려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의 존 레넌의 사망으로 인해 그들은 다시금 락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게 되었으며 그러한 대중의 복고적인 취향은 1982년에 다시금 락음악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의 한국에서의 상황은 조용필의 승승장구로 인해 락음악이 비로소 오버그라운드에 등장하게되었고 비로서 한국의 대중들은 매니아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으로서의 락음악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점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인해서 해외의 대중음악과 한국의 대중음악간의 시간적인 격차가 비로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상당히 좁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조용필의 등장으로 한국에서의 락음악이 그 위치를 오버그라운드내에서 확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과의 격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의 한국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행동들을 거듭했나를 생각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0년 5월로 다시 가보자 이때는 군홧발에 모든 것이 통제된 파시스트 통제 하에서 조용필의 노래는 시대적 상황과 모순, 유사 공존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순수한 백성에게는 공장에서 힘든 노동과 일상의 압박, 그리고 총과 몽둥이에 맞아죽은 형제자매을 묻고오는 그밤 조용필의노래를 들으며 분노에서 탈출하게끔 도와준 훌륭한 관계 기재로서 자리매김 한다고 볼 수 있다



25 댓글

임시현

2003-05-21 12:55:37

inuyk

상오기

2003-05-21 19:43:55

모든장르의 음악을 숙명인양 다 받아들였다.==>멋진표현이군요.....우리들이 오빠와 음악을 사랑하는것도 숙명처럼 느껴지는군요...

hanami

2003-05-21 22:47:08

임시현님^^ 이런 멋진글 올려주셔서 감사 드리구여 이글을 읽으면서 필님과 80년 5월을 되돌아 봅니다,

^^

2003-05-21 23:14:16

오버그라운드에서의 락의 전성기---- 이 부분에 대한 평가가 요즘 너무 박한게 아닌가 싶어요. 80년대초,중반까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외에도 그 수많았던 락밴드들과 많은 인기를

^^

2003-05-21 23:16:17

모았던 락가수들의 활동이 가능하게 된 토양을 조용필님이 열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닐텐데 말이죠.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마치 들국화의 등장으로 락이 소생한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

2003-05-21 23:17:46

것 같아요. 언더에서의 들국화등장 이전에도 오버에서의 락은 이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제 기억으로는....참 좋은 글이군요. 감사합니다.

무명인

2003-05-22 02:14:36

제목과 글내용은 그다지 상관이 없군요. 제목에 깜짝 놀라 클릭하고 읽었더니 실망이네요. 아무튼 글내용은

무명인

2003-05-22 02:16:11

그런대로 조으네요. 80년 오월로 시작된 80년대.. 조용필님은 과연 무엇이엿을까요? 한겨레기자 말따나 오아시스였는지, 미혹제였는지...

불사조

2003-05-22 03:17:04

``생명,,은 80년 의 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내면서 암울한 군사독재시기에 민중의 피맺힌 억눌림을 당한 에너지가 음악이란 매체를 통해 분출된것의 하나가 바로 생명이란 노래가

불사조

2003-05-22 03:17:58

대표적이라 할수 있다,

라커

2003-05-22 04:14:34

조용필님이 전면에 나서 활동한 덕에 들국화 시나위 등의 락밴드가 힘을 얻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을까여?^^

기억

2003-05-22 05:26:02

나는 80년도에 우리언니가 용필아저씨 연말 상받을때 흥분해서 일어나다가 찬장을 엎어서 우리엄마한테 맞는거 기억난다

쩜수5점

2003-05-22 05:26:50

좋은 글~

필사랑♡영미

2003-05-22 07:38:5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위에 기억님..넘 웃겼습니다..제게도 아픈 기억이 있네요...흑~~

dlQkfvnfrl

2003-05-22 08:43:59

생명은 광주에 대한 저항의 노래였다고 강헌님과의 대담에서 필님이 밝힌바 있고, 강헌님 글에 보면 서울 1987과 더불어 사전검열로 가사내용이 상당부분 수정됐다고 합니다. 김지하님의

dlQkfvnfrl

2003-05-22 08:46:16

얼마전 프레시안에 실린 회고록 내용이나 80년대의 학생중앙(?) 잡지에서의 김지하님과의 대담 내용과 함께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생명이 필님 나름으로의 저항의 음악이였다는 결론이 크게

dlQkfvnfrl

2003-05-22 08:48:36

틀리지는 않다고 봅니다. 저는 당시에 필님이 생명을 가요톱텐에서 1위곡에 올려놓았다는 대중적 인기차원보다도 tv의 백분쇼등에서 마지막 곡으로 부를만큼 생명을 아꼈다는 사실이 의미가

dlQkfvnfrl

2003-05-22 08:50:59

더 크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김민기님과 같은 적극적 저항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면 반론하기 어렵지만, 80년대 5공정권하에서의 적극적 저항이라는 잣대로 당시의 가수를

dlQkfvnfrl

2003-05-22 08:52:48

평가한다면 비판에서 자유로울 가수가 김민기님이나 운동권 노래패외에는 있을수 없겠지요.

dlQkfvnfrl

2003-05-22 09:12:47

그리고 가수왕 열전의 오아시스였을까? 모르핀이었을까? 이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당시의 국민이 의식있던 대학생이나 진보적 지식인들을 제외하고

dlQkfvnfrl

2003-05-22 09:15:04

5공정권에 치열한 저항의식이 있었는지와 광주의 진실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는가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일각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고 무지하게 노력을 많이 하는

dlQkfvnfrl

2003-05-22 09:17:03

어느정도의 일반적 움직임이 있었는데 조용필님의 음악이 그러한 움직임에 역행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었는가가 먼저 정립되어야 모르핀이었는지 하는 의문제기가 가능하지 않나 합니다.

dlQkfvnfrl

2003-05-22 09:19:58

며칠전 kbs를 보니 kbs도 솔직히 인정하더군요. 폭도운운하면서 진상을 적극적으로 왜곡했노라고...후대에 와서 5공과 필님 전성기를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시각도 작위적인 면이

dlQkfvnfrl

2003-05-22 09:20:16

있는것 같습니다.

dlQkfvnfrl

2003-05-22 09:47:45

사실 글내용이나 덧글과 큰 관련은 없습니다만,무명님의 혼잣말도 있으시고 생명이야기도 나오고 해서 그냥 써봤습니다. 써놓고 보니 혼자 떠들었군요.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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