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Cho Yongpil Fanclub Mi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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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 2003-06-03 03: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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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용필, 그가 만난 사람들. ( 학생중앙 85년 )
85년 4월 21일 원주 김지하 시인 댁에서

대담내용중에( www.ypc.pe.kr. 게시판에서)


조용필 ―형. 제 말 들어 보세요. 영국엔 로큰롤이 있고, 미국엔 컨트리, 프랑스엔 샹송, 이태리엔 칸소네, 일본엔 엥까(演歌)가 있잖아요? 각 나라 마다 자기네 고유의 "송"이 있는데 우린 없어요. "샹송가수", "엥까가수"식으로 우리나라도 "○○가수"라는 명칭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흔히 이미자, 나훈아, 남진 같은 가수를 뽕짝가수라고 하는데 뽕작은 뽕짝뽕짝하는 리듬 때문에 생긴 말이지 그게 정식 명칭이 될 수는 없어요.

조금 고상하게 트로트 가수라고도 하지만 그것도 일본 "도롯도"에서 나온 것일 뿐예요. 일본애들은 동경 올림픽 당시 엥까라는 명칭을 만들었대요. 엥까는 리듬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와 마음을 표현하는 거거든요. 아주 일본의 상징처럼 돼 있어요. 우리도 올림픽을 맞아 정식으로 우리 고유의 명칭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어요.

난 뽕짝 가수는 아니에요. 하지만 뽕짝을 좋아해요. 제가 영광을 갖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우리 시대에 뭔가 해 놓으면 후배들이 릴레이식으로 이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겠어요?

김지하 ―좋다! 틀이 유동적이면서도 뭐든지 잡아 먹을 수 있는 거 만들어봐. "짜배기"처럼 "짜백이"가 아니라 "짜배기"야. 남도창의 기초는 6짜배기야. 그런데 짜배기는 앞에 5도 붙일 수 있고 7도 붙일 수 있지. 3음보는 6, 4음보는 8로 되는데 짜배기라고 하면 5짜배기든 10짜배기든 유동성이 있다 이거야. 너 스타일이 대여섯 개 되는 거 같애.

입구는 좁은데 뭐든지 다 들어가는 종아리처럼 짜배기를 하나 연구해 봐. 이거 하려면 네가 몇 사람 젊은이들을 만나봐야 해. 이해인 수녀라고 있어. 김용택, 하종오….


2. 강헌< 균열을 봉합하려는 끝없는 도전 - 조용필론 > 중에서( www.pil21.com게시판에서)


이와 같은 다양한 장르 순례는 그가 대중음악가로서는 거의 퇴물의 대우에 직면하게 되는 불혹의 고개에 다다르면서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한 방향으로 집중된다. 그가 새롭게 제기한 이정표는 89년 <<제10집 Part.II>>부터 94년의 최근작까지 모두 다섯장의 앨범을 통해 증명하고 있는 바, 바로 댄스뮤직과 시퀀서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기반하는 이른바 하우스뮤직의 돌풍 속에 실종의 위기에 처한 AC(Adult Contemporary), 즉 성인 취향의 대중음악문화의 성립이다.

8집 앨범 때의 명콤비 양인자-김희갑과 트리오를 이루어 전편을 완성해 낸 그의 열한번째 앨범 <<10집 Part II>>는 또 하나의 성공작 <Q>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양인자 특유의 감상주의가 이 앨범의 색채를 너무 분위기 중심으로 몰고가는 편향이 느껴지긴 하지만 오랜만에 민요적 흥취를 불러낸 <꽃이 되고 싶어라>와 뒷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대곡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에서 발산되는 사색의 정감은 그가 이미 트로트가 아닌 새로운 성인 대중음악의 대안을 내놓을 것임을 예견케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가속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항상 새로운 것을 갈급하는 십대의 과잉 욕망이 끝없이 수입신상품을 요구하며 한국대중음악을 그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을 때, 그와 쌍벽을 이루며 독창적인 장르 실험을 계속해 왔던 송창식이 1987년 이후 이 혼란의 소용돌이로부터 멀찌감치 은인자중의 운명을 선택할 때, 그리고 이 기세등등한 인민재판 앞에 1930년대부터 통속성의 권좌를 내놓지 않았던 트로트가 마침내 눈물을 훔치며 무대의 뒤편으로 밀려나는 바로 그 순간에, 조용필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 문화적 불균형을 돌파하려는 음악적 대안을 제출한다. 그것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허공>에 이르는 혁혁한 트로트의 계보를 잇는 작업이 아니었으며 자신이 섭렵했던 모든 장르 문법들의 내면에서 성숙하게 융합시키고 발효시킴으로써 탄생한 오직 자신만이 가능한,'조용필 류'의 음악들이었다.

숨돌릴 틈도 없이 90년대의 벽두에 발표한 열두번째 앨범의 머리곡 <추억 속의 재회>는 바로 스스로가 부과한 질문에 대한 첫번째 응답이다. 이 노래의 서주부에 한없이 여유롭게 그러나 너무나 또렷하게 새겨지는 16비트의 템포와 4도의 협소한 음역에서 서서히 용틀임치는 첫 네 마디의 선율에 귀기울여 보라. 그는 바로 이 한 곡에서 위기에 몰린 한국의 AC 음악이 트로트에의 의존없이 독자적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그것은 이듬해의 걸작 앨범
<<THE DREAMS>>와 92년의 <<CHO YONG PIL 14>>로 바로 이어진다.
약간 쉰 듯한 그의 보컬이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오히려 원숙한 미의식을 분만하는 가운데, 다양한 장르를 연금하는 그의 용광로는 단단한 결정(結晶)들을 쉴새 없이 형상해 낸다. 그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꿈>에 이르면 우리는 단순성과 복잡함이 어떻게 음악적으로 만나는가를 관람하게 된다. 즉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굼을 찾아 여기에/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어디가 늪인지'로 이어지는 후렴부는 단지 c'- g'의 음표만을 고용했을 뿐인데도 대단히 극적인 울림을 자아내는데, 그것의 비밀은 간결한 음계와 리듬의 아래에 치밀하게 자리잡은 음악감독으로서의 편곡의 역량에 있다. 그는 신서사이저 기타까지 포섭하는 현악기들과 피아노, 키보드 등으로 이루어진 건반악기, 그리고 다양한 음색을 가진 여러 종류의 퍼커션들을 결코 모남이 없이 능란하게 배치함으로써 <창밖의 여자>의 궤를 계승하는 <슬픈 베아트리체> 같은 발라드나 흥겹지만 난만하지 않은 삼바 리듬의 퓨젼 재즈 <장미꽃 불을 켜요>,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은 록큰롤 <추억이 잠든 거리>같은 곡에서 드물게는 트로트의 음계를 채택한 <이별의 인사>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한편으로 웅장한 관현악적 서주부와 스트레이트한 록 리듬이 절묘하게 결합하는 <흔적의 의미> 같은 수작들을 우리에게 안겨 주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바다와 같다. 트로트와 서구 대중음악의 그 어떤 요소도 그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뉘앙스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 연금술의 비결은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데에 있다. 즉 그는 서구의 대중음악을 수용하는 그 순간에도 서구에 대한 환상의 우물에 자신을 빠트리지 않았으며 서구의 음계 위로 좌충우돌할 때에도 민요와 잡가의 본연적인 느낌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음악과 음악에 대한 태도가 결코 실험적이거나 독창적인 것은 아니라고 탄핵하 것은 물론 타당한 진술이다. 하지만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도 현재 그의 후배들이 구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법들이 바로 조용필에 의해 이미 시도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김수철 같은 주변의 영웅도 필요하지만 조용필 같이 자기과시욕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심의 우상도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3. 임진모( www.pil21.com게시판에서)

1) 2000 임진모 (jjinmoo@izm.co.kr)  조용필 공연 팜플릿    

1980년대 그가 음악천하를 호령하면서 우리 가요는 신기원이 열렸다. 서구 팝을 일방적으로 맹종하던 시절에 록, 블루스, 소울, 포크, 스탠더드 팝 그리고 우리의 전통음악 등 모든 종의 음악이 그의 손을 거쳐 통합되면서 '한국음악'으로 새롭게 주조된 것이다. 조용필은 '스폰지 같은 흡수력'으로 기존의 음악들을 모두 소화해 자신의 음악으로 전화(轉化)했고 그것은 곧 한국 대중음악의 정체성으로 직결되었다.

그는 실로 국내 대중음악과 그 음향의 절대 미학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 없이 한국 가요의 재탄생과 도약을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중들은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자존심> <눈물의 파티> <그대 발길이 머무는 것에> <꿈> 등과 함께 전에 접해보지 못한 곡의 질(質)과 경이로운 사운드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곡들에 구현된 장르의 광대한 퓨전 그리고 세션과 편곡에 대한 그의 민감성은 과거에 그랬듯 지금 들어도 여전히 날카롭다.

어디 음악의 질뿐인가. 그를 계기로 음악시장의 규모와 양(量) 이를테면 음반산업도 지금과 같은 형체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장르통합 뿐 아니라 '세대통합'도 단행해 <일편단심 민들레야>와 <난 아니야>로 '할아버지에서 손녀까지' 전 연령층을 가요구매자로 포섭하면서 음반시장의 덩치를 비약적으로 키워냈다. 그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음악계의 유일한 국민가수로 받들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또 그 말이 지닌 상징성도 바로 이 대목에 위치할 것이다.

그러나 조용필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근본의 문제인 '음악가는 누구인가'를 따져보면 곧바로 답을 얻는다. 아티스트란 자신의 음악세계와 혼을 진실하게 소리로 풀어내는 사람, 다시 말해 좋은 음악을 창조해내는 사람이다. 수백만 팬이 있던 간에, 레코드사가 어떻든 간에,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든 간에 다 떠나서 뮤지션이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자세는 먼저 '자신이 만족하는 참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팬과 음반회사를 의식하고 판매량을 고려하고 언론에 화려하게 포장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2차, 3차적인 일이다. 만약 이 순서가 도치되어 무게중심이 후자에 있다면 그는 스타일지는 몰라도 아티스트는 결코 아니다. 조용필은 언제나 음악이 먼저인 사람이다. 그의 음악에 대한 욕심과 천착이야말로 그의 첫 번째 미덕이며 바로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음악 판의 '고독한 러너'이다. 평범한 얘기로 들릴 테지만 이것이 바로 후배 뮤지션과 지금의 음악계에 던지는 보이지 않는 경고장이며 동시에 모든 음악인들이 새겨야 할 산 교훈이다.



2) 2000/04 임진모 (jjinmoo@izm.co.kr)  독서평설  

10대가 대중음악의 주요 소비층으로 등장하던 당시 그는 이른바 국내 최초의 '오빠부대'를 이끈 주인공이었으며 틴에이저 뿐 아니라 전세대가 음악에 참여하게 만든 진정한 '국민가수'였다. 그는 노년에서 소년에 이르는 폭넓은 음악소비자들을 끌어들이며 대중가요의 시장규모를 크게 확대했다.

그가 이러한 세대통합을 이루게 된 밑받침은 '장르통합'이었다. 그는 당시에 존재하던 록, 트로트, 스탠더드 등 갖가지 음악들을 조용필이란 그릇에 담아내 새롭게 또 한국적으로 빚어냈다. 조용필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가능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집대성한 단 한 명의 음악가'로 기록된다. 한마디로 그는 너무도 음악을 잘했다. <고추잠자리>(1981년) <못 찾겠다 꾀꼬리> <자존심>(1982년)은 지금 들어도 세련미가 넘친다. 언론이 붙여준 그의 별칭은 가왕(歌王)이다.

녹음과 음향수준도 놀랄 만큼의 성장을 이룩했다. 사람들은 리듬과 멜로디, 보컬은 물론 당대 최고의 연주자로 구성된 그의 그룹 '위대한 탄생'이 선사한 사운드에도 넋을 잃었다. 팬들은 조용필 이후 굳이 팝송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남긴 위대한 공헌은 뭐니뭐니해도 이처럼 서구 팝에 일방적으로 몰려있었던 시장의 주도권을 가요로 역전시켰다는데 있다. 만약 훗날 가요의 세계화가 이뤄진다면 그 모든 토대가 조용필에 의해 구축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4. 강헌과의 대담중에서 (www.pil21.com)

강헌: 그러나 90년대가 열리면서 당신과 당신의 시대가 쌓은 아성은 서서히 무너졌고 새로운 10대는 새로운 우상을 향해 달려 나갔다. 12집 이후 당신은 트로트가 아닌 새로운 성인 취향의 대중음악(Adult Comtemporary)를 지속적으로 개척했지만 이 땅의 성인 계층은 음반 시장을 떠난지 오래였음을 불행하게 증명해 보였다.

조용필:14집을 발표한 92년 가을 이미 그때는 랩 댄스음악이 모든 것을 휩쓸며 세대교체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갈 것이라는 예언은 이미 한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한다. 〈고독한 러너〉를 쓰면서 겁이 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세계적인 스타도 밀려나는 릴레이 게임이며 스타는 언제나 신인한테 죽는 법이다. 이것은 필연이다. 하지만 내가 잘한다면 남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자기 하기나름이다. 무서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자.....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조용필: . 아닌게 아니라 내 주변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트로트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고 개중에는 신경질까지 내는 이도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고 싶지 않았다. 내년, 98년이면 30년인데, 내가 트로트로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30주년을 눈앞에 두고 나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2,30대 감각의 여러 장르에다 그동안 많이 써두었던 4,50대 취향의 두곡 〈애상〉과 〈일몰〉을 선택했다. 이 두 곡은 성인 취향이 꼭 트로트가 아니라는 것과 트로트라고 해서 모든 것이 뽕짝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이상의 글을 읽고 제가 갖게 된 느낌은 < 한국적 정서에 기초한 음악>에 대한 가치부여없이, 그리고 강헌씨가 표현한 < 성인취향의 음악>에 대한 가치부여없이 <뮤지션 조용필>을 논하기 위한 접근이 어려우리라는 것입니다.

10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대중적 성공을 위해서 , 기존의 <트롯가수>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 18집에 <락>위주의 음악이 실리기를 저 자신도 무척이나 바라지만, 팬들이 지금 음악을 안다는 자칭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빠져있는듯한 <락 우월주의>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조용필님이 이룩해놓은 음악 업적을 내부에서 허무는 일만큼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 강헌씨의 16집론은 1)가왕이 컴백하며 우리에게 던져준 것 2)불멸에 관하여 - 조용필의 신작 16집이 우리에게 주는 몇가지 상념 , 두가지를 게시판에서 읽을 수 있었는데  찾아보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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