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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가 왔다.
2년 전 같은 잠실 메인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조용필 35주년 공연 때도 장대비가 왔었다.
그 곳에 승천 못한 이무기라도 집단으로 서식하는지, 어제도 폭우가 쏟아졌다.
아니 한 술 더 떠 이번에는 이리 저리 바람까지 불며 휘몰아쳤다.
2005 Feel & Peace 서울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떨린다. 정말 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할 것처럼.
여기저기 뚫린 문으로 끊임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 다들 색색의 비옷들을 입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꽃 같이 느껴진다. 그 넓은 운동장은 글자 그대로 꽃밭이다.
비 내리는 꽃밭.
우스개로 팬에도 단계가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1단계: 이 비가 오는데 뭘 잠실까지 어떻게 가? TV로도 한다는데 집에서 편히 볼란다.
2단계: 점점 더 쏟아지는군. 사람들 몰려 나오기 전에 이쯤에서 먼저 나가지.
3단계: 비가 대수냐. 우리는 조용필 팬인데...온몸이 젖어도 나는 그의 노래로 모든 걸 잊는다.
이 3단계를 우리는 골수팬이라고 한다.
어제 잠실에는 골수팬들로 넘쳐났다. 공연이 시작되자 다들 우산을 접는다.
얼굴로 들이치며 퍼붓는 비가 점점 굵어진다. 머리를 덮은 우비 위로 빗방울이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태양의 눈>을 오프닝 곡으로 하여 공연이 시작됐다. 참 이상한 건 그렇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공연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아니, 가라앉는다는 건 적당하지 않다. 내가 심장 박동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더 옳겠다.
그게 어떵게 뛰든, 설령 멈춘다고 해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모든 감각은 무대 위 그 작은 남자에게 가 있다.
그는 참 작다.
통통해보이는 동안(童顔)에도 불구하고 몸집은 더 말랐다. 그런 그가 잠실을 메운 4,5만명의 사람들을 몽땅 가슴에
품고 세 시간 내내 놓아주지 않는다. 좀 야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 어떤 사람이 세 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엑스터시 상태에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손 하나 건들지 않은 채 목소리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의 공연을 볼 때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글자 그대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無我無汝之境.
무대에서 그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열정은 정말 가슴을 지나 혼을 울린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처음 가슴을 울린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대학교 1학년 때 겨울이었다. 그 당시에 종로의 한 구석에서 야학교사를 했었다.
그 해, 짝사랑하던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잊을 수는 없었고, 눈물은 아무 때나 흘렀고,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이념과 실천에 대한 무거움은 견딜 수 없었고, 야학은 버거웠고...
아무튼 그런 흔한 20대의 시작이었다.
까라진 마음으로 종로의 한 뒷골목을 지나는데, 어느 카페의 열린 문 사이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는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자고.. 그렇게 애타던 말 한마디 못하고...잊어야 잊어야만 될 사랑이기에
깨끗이 묻어버린 내 청춘이건만...그래도 못잊어 나혼자 불러보네...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들었다. 사랑이 아직도 끝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그 마음으로
3년간이나 짝사랑을 앓았고, 그 노래는 나의 18번이 되었다.
그 후 남편을 만나 5년간 연애를 하고, 짝사랑은 새까맣게 잊고, 결혼도 하며 사는 동안 나는 늘 1단계 팬으로 살았다.
그렇게 그의 노래가 절실하지도 않았다. 가끔 음반을 사기도 했지만 너무 바빠서 한가하게 음악을 듣고 자시고 할 새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주로 클래식을 틀어놓으며 극성 엄마 따라하기를 하며 살고 있었다.
누구나에게 시련이 오듯, 상처 없는 영혼이 없듯 나에게도 시련과 상처가 닥쳤다.
허겁지겁 닥친 일들을 해치우며 시난고난한 인생이 흘러가는 동안 다시 그의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그 여성적이고도 남자의 비장함이 묻은 음색이 내 영혼을 문지르며 위로가 되었다.
이젠 그를 보고 싶고, 가까이서 그의 노래를 듣고 싶은 열정이 생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콘서트에는 가지 못했다. 왜냐고?
늘 남편에게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를 가까이서 보고 노래를 듣고 나면,
그리고 그와 눈이라도 한번 마주치게 된다면 정말로 모든 걸 다 팽개치고 그 사람을 따라 나서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이건 진짜진짜 내 마음이었는데 남편도, 어느 누구도 이 말을 들으면 깔깔 웃었다. 진짠데....
이젠 그의 콘서트에 간다. 그것도 일년에 몇 차례씩 간다.
이젠 왜 가냐고? 요즘의 대형 콘서트에서는 옛날의 디너쇼처럼 눈이 마주칠 일이 아예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조용필이라는 사람보다 40년을 바라보는 그의 노래들에 빠졌으니까.
조용필은 변화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
그의 나이 벌써 쉰 여섯. 아직도 현장에서 그의 노래들을 들으면 변주와 편곡을 감잡기 힘들다.
그가 새로이 발표하는 신곡에는 늘 새로운 시도가 있다. 그는 아직도 활발한 청년 그 자체다.
어제 비를 맞으며 끝까지 기다린 우리를 위해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가 부른 노래는 <물망초>.
...한 여자가 울고 있네...로 시작하는.
그도 비에 젖고, 나도 비에 젖고, 물망초처럼 잊을 수 없는 것들도 비에 젖고...
사랑이 외로운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것
모두를 건다는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수 있겠지
가을비 내리는 구월의 마지막 밤.
운명을 걸고 노래하는 남자의 밤. 외롭더라도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고 싶은 여자의 밤이 저물었다.
2년 전 같은 잠실 메인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조용필 35주년 공연 때도 장대비가 왔었다.
그 곳에 승천 못한 이무기라도 집단으로 서식하는지, 어제도 폭우가 쏟아졌다.
아니 한 술 더 떠 이번에는 이리 저리 바람까지 불며 휘몰아쳤다.
2005 Feel & Peace 서울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떨린다. 정말 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할 것처럼.
여기저기 뚫린 문으로 끊임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 다들 색색의 비옷들을 입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꽃 같이 느껴진다. 그 넓은 운동장은 글자 그대로 꽃밭이다.
비 내리는 꽃밭.
우스개로 팬에도 단계가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1단계: 이 비가 오는데 뭘 잠실까지 어떻게 가? TV로도 한다는데 집에서 편히 볼란다.
2단계: 점점 더 쏟아지는군. 사람들 몰려 나오기 전에 이쯤에서 먼저 나가지.
3단계: 비가 대수냐. 우리는 조용필 팬인데...온몸이 젖어도 나는 그의 노래로 모든 걸 잊는다.
이 3단계를 우리는 골수팬이라고 한다.
어제 잠실에는 골수팬들로 넘쳐났다. 공연이 시작되자 다들 우산을 접는다.
얼굴로 들이치며 퍼붓는 비가 점점 굵어진다. 머리를 덮은 우비 위로 빗방울이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태양의 눈>을 오프닝 곡으로 하여 공연이 시작됐다. 참 이상한 건 그렇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공연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아니, 가라앉는다는 건 적당하지 않다. 내가 심장 박동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더 옳겠다.
그게 어떵게 뛰든, 설령 멈춘다고 해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모든 감각은 무대 위 그 작은 남자에게 가 있다.
그는 참 작다.
통통해보이는 동안(童顔)에도 불구하고 몸집은 더 말랐다. 그런 그가 잠실을 메운 4,5만명의 사람들을 몽땅 가슴에
품고 세 시간 내내 놓아주지 않는다. 좀 야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 어떤 사람이 세 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엑스터시 상태에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손 하나 건들지 않은 채 목소리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의 공연을 볼 때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글자 그대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無我無汝之境.
무대에서 그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열정은 정말 가슴을 지나 혼을 울린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처음 가슴을 울린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대학교 1학년 때 겨울이었다. 그 당시에 종로의 한 구석에서 야학교사를 했었다.
그 해, 짝사랑하던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잊을 수는 없었고, 눈물은 아무 때나 흘렀고,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이념과 실천에 대한 무거움은 견딜 수 없었고, 야학은 버거웠고...
아무튼 그런 흔한 20대의 시작이었다.
까라진 마음으로 종로의 한 뒷골목을 지나는데, 어느 카페의 열린 문 사이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는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자고.. 그렇게 애타던 말 한마디 못하고...잊어야 잊어야만 될 사랑이기에
깨끗이 묻어버린 내 청춘이건만...그래도 못잊어 나혼자 불러보네...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들었다. 사랑이 아직도 끝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그 마음으로
3년간이나 짝사랑을 앓았고, 그 노래는 나의 18번이 되었다.
그 후 남편을 만나 5년간 연애를 하고, 짝사랑은 새까맣게 잊고, 결혼도 하며 사는 동안 나는 늘 1단계 팬으로 살았다.
그렇게 그의 노래가 절실하지도 않았다. 가끔 음반을 사기도 했지만 너무 바빠서 한가하게 음악을 듣고 자시고 할 새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주로 클래식을 틀어놓으며 극성 엄마 따라하기를 하며 살고 있었다.
누구나에게 시련이 오듯, 상처 없는 영혼이 없듯 나에게도 시련과 상처가 닥쳤다.
허겁지겁 닥친 일들을 해치우며 시난고난한 인생이 흘러가는 동안 다시 그의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그 여성적이고도 남자의 비장함이 묻은 음색이 내 영혼을 문지르며 위로가 되었다.
이젠 그를 보고 싶고, 가까이서 그의 노래를 듣고 싶은 열정이 생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콘서트에는 가지 못했다. 왜냐고?
늘 남편에게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를 가까이서 보고 노래를 듣고 나면,
그리고 그와 눈이라도 한번 마주치게 된다면 정말로 모든 걸 다 팽개치고 그 사람을 따라 나서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이건 진짜진짜 내 마음이었는데 남편도, 어느 누구도 이 말을 들으면 깔깔 웃었다. 진짠데....
이젠 그의 콘서트에 간다. 그것도 일년에 몇 차례씩 간다.
이젠 왜 가냐고? 요즘의 대형 콘서트에서는 옛날의 디너쇼처럼 눈이 마주칠 일이 아예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조용필이라는 사람보다 40년을 바라보는 그의 노래들에 빠졌으니까.
조용필은 변화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
그의 나이 벌써 쉰 여섯. 아직도 현장에서 그의 노래들을 들으면 변주와 편곡을 감잡기 힘들다.
그가 새로이 발표하는 신곡에는 늘 새로운 시도가 있다. 그는 아직도 활발한 청년 그 자체다.
어제 비를 맞으며 끝까지 기다린 우리를 위해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가 부른 노래는 <물망초>.
...한 여자가 울고 있네...로 시작하는.
그도 비에 젖고, 나도 비에 젖고, 물망초처럼 잊을 수 없는 것들도 비에 젖고...
사랑이 외로운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것
모두를 건다는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수 있겠지
가을비 내리는 구월의 마지막 밤.
운명을 걸고 노래하는 남자의 밤. 외롭더라도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고 싶은 여자의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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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1 | 2840 |
6 댓글
Sue
2005-10-01 23:54:11
뒷풀이 안보이던데..어데로가셨어요..
혹시 헤메시다가 댁에 가시건 아니죠? 올만에 넘반가웠습니다
새벽이슬
2005-10-01 23:56:35
송상희
2005-10-02 00:01:30
짹짹이
2005-10-02 00:11:24
독서를 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한 여류작가의 한편의 수필집처럼...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이런 수필 자주 읽게 해주셨으면 해요.
그러고 보니 어제 뒷풀이에서 feel받은 그녀님을 못 봤네요. 이쁜 얼굴좀
보여 주시고 가시지 그랬어요. 어제는 弼님께 온통 feel받아서 더욱 더
활짝핀 꽃이 되셨을텐데... 예쁜 후기 너무 잘 읽었어요.^^
♡하늘
2005-10-02 04:42:09
항상 짝궁인 그냥요언니랑 공연보러 다니시는 모습이 부러워요...^^
팬클럽운영자
2005-10-02 07:20:14
정말로 필 제대로 받으셨네요.
뒷풀이가서 한참 찾았답니다..^^ 누굴꼭 소개해드리려고요.
담에 예당때나 가능하겠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