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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베스트 앨범 - 조용필
(기억이 맞으면) 처음으로 마음에 들어온 곡은 ‘고추잠자리’였다. 조용필이 ‘한 오백년’이란 곡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과 흡사하게 나도 TV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뮤직 비디오처럼 시골 가을 길을 걸어가며 부르는 이 노래를 듣고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가성으로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나,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라 노래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어린 시절에 듣기에도 기존의 가요가 주었던 평이한 느낌과 상당히 다른 레벨을 체험했다고나 할까.
4집의 ‘난 아니야’, ‘못 찾겠다 꾀꼬리’, ‘자존심’의 흥겨움도 좋아했다. 좋아했던 곡들은 많은 경우 점점 싫어졌지만 ‘자존심’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졌다. 2000년대 초반에 한 웹진에 글을 쓸 때 조용필의 음악사를 정리할 시간이 있었다. 그때 ‘자존심’이야말로 조용필 최고의 곡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용필의 초창기 모습은 ‘잊기로 했네’와 같이 미성이었다. 하지만 대마초 파동 이후 3년간 와신상담했던 흔적이 지금의 진성과 탁성과 가성을 자유자재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초창기 ‘창밖의 여자’에서 보여주었던 가창이 감정 과잉이라고 느껴질 만큼 1990년대 이후의 탁성은 정말 매력적이다.
5집에선 ‘나는 너 좋아’를, 모든 곡이 라디오를 두들기며 인기를 얻었던 7집에선 ‘들꽃’을 좋아했고 8집에선 누구나 한 번씩은 좋아해봤을 법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9집에선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를 좋아하다 ‘아하 그렇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10집의 ‘서울 서울 서울’은 듣자마자 ‘오!’ 하는 감탄사를 유발하게 만든 곡이다. ‘단발머리’의 뿅뿅 사운드와 ‘어제, 오늘 그리고’의 세련된 편곡이 다시 한 번 한 단계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1980년 1집 이후 초창기의 성공요인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전법이 통했다고 보아서인지 조용필은 은연중에 나이 든 세대나 젊은 세대, 심지어 어린 세대들까지 포섭하려는 전략을 폈다. 10집과 11집(10집 파트 2)은 마치 이승환이 발라드와 록을 구분해 앨범을 따로 분리해 발표했듯이 10집에는 7집과 9집의 기조를 이어 젊은 세대에게 집중한 앨범을, 11집에서는 6집과 8집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윗세대와 어울릴 만한 앨범을 내놓았다. 특히 신디사이저 위주의 현대적인 편곡으로 중무장한 10집으로 인해 당시 구매자 층이 밀집해 있는 10대와 20대는 조용필을 ‘어른들이 좋아하는 음악’에서 ‘자신들도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재발견하게 된다. 나역시 조용필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은 이 시기에 형성된 것 같다. 초반 ‘서울 서울 서울’, ‘나도 몰라’, ‘모나리자’의 3연타는 내 심연에 가라 앉아 있던 그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여담이지만 이 앨범에서 ‘I Love 수지’는 이후 강수지가 데뷔했을 때나 익스트림(Extreme)이 ‘Suzi’를 발표했을 때, 그리고 비슷하다고 느꼈던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을 들을 때, 그리고 지금 미스에이의 수지를 볼 때도 생각나는, 참 생명력이 긴 곡이다(10집을 같이 작업했던 작곡가 조수지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11집은 조용필이 개인적으로 가장 잘 맞는 작곡가라고 여기는 김희갑과 그의 작사 파트너이자 아내인 양인자 콤비를 전면에 내세워 10집보다는 성인 취향(굳이 이 표현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절절한 조용필식 발라드’라고 부르겠다)으로 발표한 앨범이다. ‘Q’는 나름대로 좋아했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확대한 버전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내레이션보단 허밍 부분을 좋아했다. 이후 조용필은 양인자와는 16집에서 잠깐 만나지만 멜로디를 만드는 김희갑과는 헤어짐으로써 사실상 트로트를 비롯한 성인 취향의 방향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이런 분위기는 16집에 들어서면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18집까지 김희갑의 작품이 없다는 뜻이지 둘이 완전히 갈라섰다는 말은 아니다. 둘은 같이 뮤지컬 준비를 했었고 이후에도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김희갑은 뮤지컬 [명성황후]의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이며 제작자다).
12집부터 15집까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넥스트, 듀스, 공일오비에 버금갈 만큼 많이 들었다. 내 가방에서 조용필의 카세트테이프를 본 한 선배가 “넌 이런 거 듣냐?”하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기존의 인기가수는 물론이고 1980년대 말 새롭게 등장한 발라드 주자들이 모두 댄스의 폭풍우를 비켜갈 수 없던 시기에 조용필의 테이프를 들고 다니니 별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시기는 박주연과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을 만들기도 하고 보컬도 이전의 열창 모드에서 톤을 죽이는 등 새로운 창법으로 모든 세대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그런지 귀에 잘 감겼고 후에 카세트테이프 중에서 CD로 재구매했던 목록에 이 앨범들도 포함시킬 정도로 애정을 가졌다. 12집의 ‘추억 속의 재회’는 탁성의 절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대 향기는 흩날리고’의 미풍 같은 즐거움과 ‘돌도 도는 인생’도 12집이 내포한 수작들이다. 모든 곡의 편곡이 기가 막힌 13집에선 ‘기다림’, ‘장미꽃 불을 켜요’ 14집은 전체의 흐름으로 들어야 해서 특별한 싱글이 꼽아지진 않지만 ‘추억에도 없는 이별’, 15집에선 이맘 때 들으면 가슴속에 절절하게 박히는 ‘남겨진 자의 고독’ 등이 내 스타일인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인 ‘여행을 떠나요’보다 ‘도시를 떠나서’가 참 좋다.
16집은 역시 ‘바람의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유한한 인간이 삶의 본질을 알 수 있을까를 묻고, ‘사랑’이 아닐까 하고 대답하는 이 곡은 15집의 ‘끝없는 날개짓 하나로’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17집은 메시지의 측면에서 1990년대 초반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2000년대 후반의 빠른 노래들을 좋아하는 리스너들은 약간 고리타분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작은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작은 천국’을 뽑아 보겠다. 마지막으로 10년 전에 나온 18집 [Over The Rainbow]에서 ‘태양의 눈’의 뮤지컬적인 화려한 편곡 전개가 웅장하고 장엄하게 가슴 속을 파고든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그의 필생의 숙원인 뮤지컬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높여준다.
작곡가 김희갑은 조용필을 일러 ‘머릿속에서 음악이 한시도 떠나지 않는 친구’라고 말한다. 조용필의 다양한 장르와 창법에 대한 연구는 그런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그 노력은 그를 지칭하는 호칭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용필은 16집을 내놓고 인터뷰한 계간지 [리뷰]에서 음악평론가 강헌을 통해 ‘가왕’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발라드의 황제’나 ‘십대들의 대통령’과 같은 호칭은 새로운 가수들이 나타날 때마다 돌려쓰지만 ‘가왕’이란 타이틀은 ‘팝의 황제’나 ‘농구의 황제’처럼 특정한 지위를 부여한 단어 같다. 과연 어느 도전자가 이런 말을 또 들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점점 조용필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18집을 낸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열아홉 번째 음반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 번은 주로 다른 작곡가들에게 받고 한 번은 자신의 곡으로 채우는 지그재그식 전략에 따르면 19집은 다른 작곡가들의 곡으로 채워야겠지만, 10여 년 동안 만들어 놓은 곡들이 더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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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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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꿀꿀푸름누리
2012-12-01 20:36:42
필사랑♡김영미
2012-12-03 21:54:30
현지운음악평론가....잘 보고 갑니다.^^
꿈이좋아
2012-12-04 04:41:11
가슴이 벅찹니다.^^..
내년이면 오빠의 소중한 19집 기다리는 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오빠 많이 부담스러우실것 같아요..
카리용
2012-12-30 20:28:47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우리는 조용필님에 대한 욕심이 참 많습니다. 조용필님 19집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