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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초창기 음악 총정리 (퍼옴)

팬~!, 2001-07-01 04:21:06

조회 수
4228
추천 수
4


http://column.daum.net/choyongpil
(조용필칼럼-너희가 조용필을 아느냐?)
에서 퍼왔습니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초창기 조용필의
음악생활에 대해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올립니다..


1950년.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에서 염전업(소금)을 하던
조경구씨의 3남 4녀중 6번째로 태어남.

* 참고:
조영일 - 둘째형.조용필은 학창시절
영일씨 몰래 기타를 배우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음악을 하겠다며 가출한 조용필씨를 쫓아다니며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부단히도 설득함.
73년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
딸 수지(10집-'아이러브 수지'의 주인공)를 7년간
조용필에게 맡겼었음.

조종순 - 조용필의 막내 여동생,'자존심'의 작사자

1956년(7세)
홍역을 잘못앓아 왼쪽눈 시력이 나빠짐
지금은 거의 실명상태

이후...

화성군 송산국민학교 입학
화성군 송산중학교 입학
중 2때 서울 경동중으로 전학(동창 안성기)

중학교 시절 맹인가수 레이챨슨
니니로서의 트럼펫과
바이올린 곡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함

또한 학창시절 '벤쳐스'의 내한공연에 감동받아
기타에 관심을 갖기 시작,형 조영일씨의 기타로
몰래 연습을 함.아버지의 반대로 음악을 못하게
되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함.

경동중고 시절을 보내고
1968년 3월24일 경동고 졸업식날 가출.
고교시절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에드킨즈'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미8군부대가 위치한 경기도 파주의 장팔촌으로 감.
"열심히 노력하여 비틀즈가 되리라"맹세했다 함.

*6.25이후 미8군 무대는 한국에 락을 처음 소개한
한국 락의 시발지라 할 수 있음

*비틀즈가 조용필이 중학생이던 1964년에
영국에서 미국에 진출하여 명반으로 손꼽히는
"Rubber Soul"(1965),
"Sgt.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1967)등의
앨범 등을 발표하여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던 시기
1970년 마지막 앨범 "Let It Be"를 발표함
(후에 조용필과 비틀즈를 이야기 할때 언급하겠음)

'DMZ'라는 나이트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단 하룻만에 실력이 없어 쫓겨남.
이 때 조용필의 파트는 리드 기타였음.
(첫무대의 레파토리가 기타에 관심을 갖게했던
벤쳐스의 '상하이 트위스트''파이프라인'불독' 등의
노래였다 함.)

이후.
문산 근처의 '용주골'(지금도 윤락가로 유명함)에 가서
홀로 '첵돌스'라는 그룹에 들어가기도 함.

1969년

"파이브핑거스"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미8군의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그 바닥에서는 최고의 밴드만이
그 무대에 설 수 있었음)

* 이때 흑인병사의 권유로 대마초를 2~3회 정도
흡연한 것이 6년여년이 지나
75년 남산마약반에 끌려가는 계기가 됨.

그 후 의정부를 거쳐 최고의 무대 이태원에 입성
'파이브 핑거스'는 주가를 높힘.
(이때까지도 기타리스트였던 조용필은
드러머와 듀엣으로 '프라우드 메리'를 부른적이 있음.
반응이 없어 그만두었음)

1970년 여름.
유명해지자 밴드 출연광고가 난 나이트클럽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온 둘때형 영일씨를 따라 잠시 집에 들어감  
약 두달간 집에서 근신
그러나 두번째 가출 감행.
이름없는 밴드활동에서 활동 중에
그 밴드의 싱어이자 베이스가 군에 입대하자
대역으로 'Jumping Jack Fresh'
'When a Man Loves a Woman'
'I Feel Good'등
의 노래를 불렸는데,
조용필의 노래를 들은 흑인병사가 재즈뮤지션
바비 블랜드의 'Lead Me On'이라는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하여 연습 후 불러줌.
이것이 반응이 좋아 가수로써의 시작이 됨.

1970년 말
드러머 김대환의 제의로 '김트리오' 결성
(리더겸 드럼-김대환,베이스-이남이,기타-조용필)
후에 기타 최이철을 보강하여 4인조 밴드가 됨.
멤버들이 모두 보컬도 겸하고 더구나 투기타 시스템의
이 그룹에서 음악적으로 한단계 성숙함.

1971년.
제1회 보컬그룹경연대회(선데이 서울 주최)에서
1등을 차지하여 조용필의 보컬실력을 인정받음.
이 시기 이남이와 함께 부른 앨범에
기타곡 "돌아와요 해운대에"(아시아레코드)를
취입하였으나 별 반응은 없었음
(훗날 가사를 바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름)

이때, 같은 업소에서 일하던 '강태환악단'으로부터
재즈에 눈을 뜸.당시 유행하던 비교적 쉬운 음악인
락,팝으로부터 음악적인 시야를 넓히고,
강태환씨로부터 '청음(소리를 듣고 채보하는 것)을
배움.

같은 해.부산으로 내려가 유명해진 '김트리오'는
처음으로 TBC-TV에 출연하게 됨.

KBS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 '돌아오지 않는 강'
(김학송 작곡)도 이 시기에 불렀다.

'김트리오'는 이 때'사랑의 자장가','하얀모래의 꿈'
님이여'등
6곡이 담긴 앨범을 출반했으나
발매가 되지않아 기념음반으로만 남았다가
훗날 조용필이 유명해지면서 다시 발매되었다.

1972년 서울로 다시 올라와 활동
엘비스 프레슬리의 'Are You Lone some Tonight'
비지스의 'Words' - 이상 컨템프러리 팝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Once There Was A Love'
등을 주로 불렀으나 ,
멤버간 음악적인 견해차이로 '김트리오' 해체됨.

팀 해체후 '25시'의 리더로 있던 조갑출씨의
제의로 몇개월 부산 극동호텔에서 그들과 함께 활동.

1973년
그룹 '25시'에서 활동하던 조용필은
그를 찾아온 작은 형 영일씨에 의해
군복무(방위소집) 영장이 나온 것을 알게됨.
이때가 그의 나이 24살때였음.

(그해 영일씨는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9살이던 딸 수지를 조용필에게 맡기고 떠남.
그 후 7년간 조용필은 조카인 수지를 딸처럼 기름
훗날 미국으로 떠난 수지를 그리워하는 노래
'아이러브 수지(10집)'를 부름)

2차 가출후 3년만에 부모님을 상봉하고,
본적지인 경기도 화성군에서 해안경비병으로 복무.
후에 부산으로 방위병전출을 가게 되어
낮에는 복무를 하고 밤에는 '조갑출과 25시'에서
잠시 활동.이때 조용필은 드럼도 연주했다.  
서울로 다시 전출올 무렵 '25시'해체됨.

1974년
서울에서 방위복무 중  
미국 시카고의 브라스밴드들의 영향을 받아
트럼본둘, 트럼핏둘, 건반, 기타, 베이스, 드럼 등
8인조 관악기밴드인 '조용필과 그림자'를 조직.
(조용필 본인이 조직한 최초의 밴드,비로소 그룹의
리더가 됨)

이 때,최고의 밤무대인 종로 2가 '웨스턴'과
동대문 '이스턴'등에 나갔다.
같은 업소에 출연한 이장희,
(당시 '불켜진 창','너'등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MC 허참 등과 친분을 쌓았다.

1975년말
방위말년이던 이때, 박정희대통령은 아들 지만씨가
마약에 빠지는 등의 방탕한 생활에 빠지자
전면적인 마약소탕령을 내렸다.
더불어 반체제 포크가수들에 대한 탄압의 도구로
사용함.
이때 그도 남산의 마약반에 끌려간다.
당시 무명이였던 조용필은
'69년에 대마초를 피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자백하고 벌금 10만원을 받고 풀려남.
이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

1976년
1월 방위제대(27세)후
(당시는 방위복무 기간이 길었다)

동대문의 '이스턴'에 자주 출입하며
조용필과 친분을 쌓았던
당시 최고의 국가대표축구선수
이회택이 자신이 알고 지내던
킹레코드의 박성배 사장에게
'실력이 있다'며 조용필을 소개함.

이때 프로듀서 역할을 한 사람이 '25시'에서
같이 활동하던 '조갑출'씨였다.

조갑출씨는 '김트리오'시절
조용필이 이남이와 함께
불러 아세아 레코드에서 취입한 앨범속에 들어있던 곡
'돌아와요 해운대에'를 리메이크할 것을
권유했으나 '뽕짝'이라 하여
처음엔 거부하였다 함.

첫 독집인 이 앨범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너무 짧아요''정''생각이 나네'등
6곡이 수록됨.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4분의 2박자 '뽕짝'을
젊은이들풍의 4분의 4박자로 편곡하여 발표함.
(국내 최초의 트롯고고)

이 곡은 처음엔 거의 반응이 없어 조용필이 직접
서울과 부산 등지의 밤무대를 찾아다니며 홍보함.
이 후 이 노래가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할 무렵에
조총련계 일본동포들의 한국방문이 허용되어
사회적인 분위기를 타고 대히트함.
가요차트 1위,방송횟수 1위 기록.
(혹자는 이때 이미 100만장을 팔았다고 주장하기도 함)

1976년 말.
TBC 라디오 '노래하는 곳에' 고정출연
이때 하숙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에 부모님을
모시게 됨.

1977년 초
'조용필도 대마초 가수였다'는 투서가 날라듬.
조용필 최초의 스캔들였던 셈.

77년 5월 4일.
몇개월간 그런 스캔들속에 가수활동을 계속하다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지면서
장충체육관 공연을 끝으로 은퇴선언.

정부의 금지가수 명단에 포함됨.

이후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
'한오백년'을 듣고 감명받은 그는
목소리를 트이는 작업에 들어감.
내장산,속리산,대전 동학사,범어사 등을 돌며
진도아리랑,성주풀이,흥부전 등을 부르며
6개월간에 걸친 노력끝에 목소리를 트임.

(흥부전의 '흥부가 놀부에게 구걸하는 장면'은
대마초가수해금 후 첫컴백쇼를 열었을때
자랑스럽게 불렀던 곡)

1977년 가을
부산에 잠시 내려가서 잠깐 동안
베이스기타를 치던
유재학씨(80년대 그의 매니져,현 대영에이브이 사장)와
잠시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함.
그러나.'대마초'가수라는 멍에때문에 포기하고
서울에 올라옴.

이때,
비지스,오제이스,로드 스튜어트 등의
탁성과 가성을 기타를 치며 연습함.
(훗날 가성,탁성,진성을 넘나드는
목소리의 마술사가 되는 기반이 됨)

78년 4월
방송을 제외하고는 대마초가수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규제완화 조치 발표.

이때 유재학 등과 함께 밴드를 조직하여
명동 '마이하우스', 북악호텔나이트클럽 등의
무대에 다시 섰으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르지 않음
외국곡만 연주,노래하였으나.
대마초 가수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음악적인 소양이 완벽에
가까워진 시기.
이때 '단발머리'등의 노래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됨.

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망.

79년 12월 6일 대마초연예인 전면해금조치

며칠 후
동아방송PD 안평선으로부터 80년 정초에
방송될 드라마 '창밖의 여자'의 주제곡을 만들어달라는
제의를 받음.
배명숙의 작사에 조용필이 곡을 입혀
'창밖의 여자'라는 불후의 명곡이 탄생함.
(방송국에서 처음으로 이 노래를 들은
배명숙씨는 눈물을 흘렸다고 함)

동시에 지구레코드에서 '창밖의 여자'는
'단발머리' 등의 노래와 함께 1집에 수록되어
발표됨.

그의 80년대 영광이 시작되는 순간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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