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게시판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던 조용필의 自傳的 고백수기◆
<1988년 8월 25일 목요일 자>
목숨까지 던지며 지키고 싶어 했던 음악
사랑도 버려야 했던 음악
무엇이 나를 그토록 미치도록 만들었는지...
음악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일곱살 되던 해 가을 달빛이 무척 밝았던날 밤
멀리서 들려오던 하모니으카의 선율은 잊을 수 없다.
그것을 음악이 나를 부르는 소리였고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에서 염전업을
하는 부모님의 3남 4녀가운데 여섯째로 태어 났다.
어릴때 꿈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자라던 시절이 6.25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 동네 아이들과
딱지치기 놀이를 하다보면 딱지에 그려져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수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바우고개>를 동네 사람들 앞에서 가끔
부른적은 있으나 노래를 잘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수줍음을 잘 타 남의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고 일곱살때 홍역을 잘못 앓아
후유증으로 시력이 악화되어 지금도 왼쪽눈은 잘 안 보인다.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느라고 학교를 쉬기도 했다.
화성군 송산 중학교 2학년때 서울 경동 중학교로 전학할때
까지는 음악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음악과의 두번째 만남은 맹인 가수 레이 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로 이뤄졌다.
중3 여름 방학때 고향 마을의 바닷가 제방둑을 거닐다
최동욱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 [3시의 다이알]에서 흘러 나오던
이 노래를 우연히 들었는데 레이 찰스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너무 감동적으로 들려 이후 나를 팝음악광으로 만들었다.
또 하나 나를 사로 잡은 것은 니니로서의 <밤 하늘의 트럼펫>이었다.
이 곡을 들으며 트럼펫의 음색에 얼마나 반했는지 트럼펫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재미있는 일은 훗날 동경 가요제에서 장본인 니니 로서를 만났던 것이다.
이때 니니로서는 대히트곡 [친구여]를 받아 레코딩까지 했다.
"어렸을때 당신의 음악을 듣고 감동해 음악을 시작했다"고 밝히자
"이제는 당신이 나를 감동 시키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G선상의 아리아]도 바이얼린을 배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할 만큼 좋아했던 곡이다.
기타에 관심을 갖기 시작 한것은 당시 유행하던 <벤처스>의 영향이었다.
내한 공연을 하던 벤처스의 [상하이 트위스트] [파이프라인] [불독]
등을 연주하는 모습은 강렬한 충격이었다.
하나님이 손가락이 있다면 바로 그들의 기타연주하는
손가락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집에는 둘째형(조영일씨, 당시 한양대 공대 재학)
이 치던 고물통 기타가 하나 있었는데
벤처스의 레코드를 들으며 똑같이 따볼려고 꽤나 애를 썼었다.
형은 기타줄 끊어진다고 기타를 못만지게 했고
아버지도 탐탁치 않게 여겨 언제나 집 뒷산에 올라가 연습했다.
[상하이 트위스트] [파이프라인] [불독]등 이때 연습하던 곡들은
고등학교 3학년때 서소문 대한일보 건물 1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의
내 첫무대와 나중에 기지촌 무대에서 주요한 레퍼토리로 쓰인 의미있는 곡들이다.
그때 까지 별다른 취미나 특기가 없던 나는 하루종일 기타를 끼고 살았다.
싫증을 잘내 뭐하나 끝까지 하는일이 별로 없었던 내가
그토록 키타에 집중 할 수 있었던 사실은 나 자신도 놀랐던 일이다.
내게 음악은 숙명으로 받아 들여야 했다.
부모님들도 하루 이틀 붙들고 있다 그만 두겠지하고 가만 놔뒀지만
사태가 심각한것을 느끼고 야단을 치다가
아버지가 기타까지 부숴버리기에 이른것이다.
이일은 오히려 내게 더욱 자극을 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출을 하게 만들었고
아마추어에서 프로세계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름다운향기' 퍼올림~^^*
<1988년 8월 25일 목요일 자>
목숨까지 던지며 지키고 싶어 했던 음악
사랑도 버려야 했던 음악
무엇이 나를 그토록 미치도록 만들었는지...
음악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일곱살 되던 해 가을 달빛이 무척 밝았던날 밤
멀리서 들려오던 하모니으카의 선율은 잊을 수 없다.
그것을 음악이 나를 부르는 소리였고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에서 염전업을
하는 부모님의 3남 4녀가운데 여섯째로 태어 났다.
어릴때 꿈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자라던 시절이 6.25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 동네 아이들과
딱지치기 놀이를 하다보면 딱지에 그려져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수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바우고개>를 동네 사람들 앞에서 가끔
부른적은 있으나 노래를 잘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수줍음을 잘 타 남의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고 일곱살때 홍역을 잘못 앓아
후유증으로 시력이 악화되어 지금도 왼쪽눈은 잘 안 보인다.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느라고 학교를 쉬기도 했다.
화성군 송산 중학교 2학년때 서울 경동 중학교로 전학할때
까지는 음악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음악과의 두번째 만남은 맹인 가수 레이 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로 이뤄졌다.
중3 여름 방학때 고향 마을의 바닷가 제방둑을 거닐다
최동욱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 [3시의 다이알]에서 흘러 나오던
이 노래를 우연히 들었는데 레이 찰스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너무 감동적으로 들려 이후 나를 팝음악광으로 만들었다.
또 하나 나를 사로 잡은 것은 니니로서의 <밤 하늘의 트럼펫>이었다.
이 곡을 들으며 트럼펫의 음색에 얼마나 반했는지 트럼펫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재미있는 일은 훗날 동경 가요제에서 장본인 니니 로서를 만났던 것이다.
이때 니니로서는 대히트곡 [친구여]를 받아 레코딩까지 했다.
"어렸을때 당신의 음악을 듣고 감동해 음악을 시작했다"고 밝히자
"이제는 당신이 나를 감동 시키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G선상의 아리아]도 바이얼린을 배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할 만큼 좋아했던 곡이다.
기타에 관심을 갖기 시작 한것은 당시 유행하던 <벤처스>의 영향이었다.
내한 공연을 하던 벤처스의 [상하이 트위스트] [파이프라인] [불독]
등을 연주하는 모습은 강렬한 충격이었다.
하나님이 손가락이 있다면 바로 그들의 기타연주하는
손가락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집에는 둘째형(조영일씨, 당시 한양대 공대 재학)
이 치던 고물통 기타가 하나 있었는데
벤처스의 레코드를 들으며 똑같이 따볼려고 꽤나 애를 썼었다.
형은 기타줄 끊어진다고 기타를 못만지게 했고
아버지도 탐탁치 않게 여겨 언제나 집 뒷산에 올라가 연습했다.
[상하이 트위스트] [파이프라인] [불독]등 이때 연습하던 곡들은
고등학교 3학년때 서소문 대한일보 건물 1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의
내 첫무대와 나중에 기지촌 무대에서 주요한 레퍼토리로 쓰인 의미있는 곡들이다.
그때 까지 별다른 취미나 특기가 없던 나는 하루종일 기타를 끼고 살았다.
싫증을 잘내 뭐하나 끝까지 하는일이 별로 없었던 내가
그토록 키타에 집중 할 수 있었던 사실은 나 자신도 놀랐던 일이다.
내게 음악은 숙명으로 받아 들여야 했다.
부모님들도 하루 이틀 붙들고 있다 그만 두겠지하고 가만 놔뒀지만
사태가 심각한것을 느끼고 야단을 치다가
아버지가 기타까지 부숴버리기에 이른것이다.
이일은 오히려 내게 더욱 자극을 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출을 하게 만들었고
아마추어에서 프로세계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름다운향기' 퍼올림~^^*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