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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 조용필을 알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조용필이 우리 나라 최고의 가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끼, 그리고 그의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조용필도 처음부터 재능을 펼치진 못했다. 남못지 않게 몇 년간의 무명생활의 배고픔을 겪게 되었다.
경동고를 졸업하면서 조용필은 대중가수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다.
1969년 초 컨츄리웨스턴 그룹인 '에트킨즈'를 결성하고 당시 대중가요의 주무대였던 주한미군 부대에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1971년 3인조 그룹 '김 트리오'를 결성하여 '선데이컵 팝그룹 콘테스트'에서 '님이여'라는 노래로 최우수 가수왕상을 수상하며 음악적 역량을 키워갔다.
그룹 활동을 3년여 동안 한 후, 1972년 2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며 조용필은 가요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당시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100만장이라는 판매를 기록하며 조용필을 최고의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한다.
이처럼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조용필은 자신의 인생중 가장 혹독했던 시기인 70년대말의 음악적 고행으로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노력한 조용필은 1980년 첫번째 앨범을 들고 팬들을 찾아온다.
첫번째 앨범의 타이틀곡인 '창밖의 여자'가 150만장이라는 판매를 기록하며 가요계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고, '단발머리'와 민요를 새롭게 편곡한 '한오백년' 역시 큰 인기를 모았다.
이후 여덟번째 앨범 '허공'이 인기를 끌었던 1986년까지 각종 가요상을 휩쓸면서 명실 상부한 한국 최고의 가수로 발돋음했을 뿐만 아니라 고소득 연예인 1위를 차지하며 인기와 부를 동시에 누리게 된다.
다섯번째 앨범 수록곡인 '친구여', 일곱번째와 여덟번째 앨범 수록곡인 '여행을 떠나요','허공','킬로만자로의 표범'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8년동안 사귀어온 약혼녀 박지숙과의 비밀 결혼으로 팬들과 언론계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조용필은 '나를 믿고 망부석처럼 살아온 그녀를 위해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면서 약혼녀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 박지숙의 자살 소동등으로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은 조용필은 음악 활동에만 전념하게 된다.
국제적인 가수로 거듭나기 위해 조용필은 1982년 일본 문화방송 3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매년 일본 NHK TV 와 PAX MUSICA에 참가하여 일본을 비롯한 해외 여러나라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번째 앨범 '서울 서울 서울' 이후로 연평균 60회 이상의 국내외 콘서트 위주로 활동, 방송 활동보다는 라이브 무대에 주력하며 한국 가요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조용필은 첫 앨범부터 1994년에 발표한 열다섯번째 앨범까지 정규 앨범 15장과 실황 앨범 2장 그리고 베스트 앨범 3장을 발표해 지금까지 총 12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의 앨범 판매량을 올렸다. 또 일본에서 정식 앨번 16장과 싱글 13장을 발표해 6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아직 공식적인 판매량이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조용필의 국내외 판매량은 2000만장 이상으로 기록된다.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ypc레코드사를 통해 통산 열여섯번째 앨범인 'ETERNALLY'를 발표한다. 3년만에 나온 'ETERNALLY'은 그룹 '시카고'의 명 베이시스트 '마이클 랜다우'와 바이올리니스트 '제레미 루복',38인조 오케스트라 그리고 흑인 코러스까지 동원하였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인 '바람의 노래'는 조용필 자신의 지금까지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노래했다고 볼 수 있다. 평론가들은 열여섯번째 앨범에 이르도록 변함이 없는 그의 의욕과 노련미를 극찬했다.
조용필은 분명 20세기의 대표적인 가수임에 틀림없다.
그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시간,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을 고려해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것이다.
'작은 거인','최고의 국민가수'등의 수식어로 불려지는 조용필은 어느새 50세 넘어버린 나이이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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