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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처음에 용필님이 나오나 싶을만한 사람이 나오더디..
알고 보니 모창가수 주용필이었다.
당근 관심있게 본 나는 그 사람의 그림자 인생에 대해 간단히 써볼까 한다.
본명 이일로 (39).
그는 서강대 국어 국문학과 재학 중 데모참가등으로 제적이 되고 (아마 1학년?)
그 후 여러가지 직장을 알아봤으나 도저히 직장을 구할 수 없어..(아시죠?
80년대만 하더라도 데모 한 사람들..것도 제적생이었으면 직장 구하기 힘들었
다는 거) 마지막으로 돌파구를 찾은 것이 밤무대 가수 였다고 한다.
그러나 100여군데의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낙심히다가 조용필의 노래로 한번 도전을
하기로 작심(이유는 조용필의 인기의 후광을 업고저) 드디어 87년 한 밤무대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다.
이를 듣던 심사위원(?) 왈.."역시 노래는 조용필이 최고야" 라며 당당히 합격을
하여 밤무대 가수 시작.
그후 하루 7000원의 일당을 받으면서 두어군데의 업소를 뛰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술취한 손님들의 비난, 야유..
"저거 조용필 맞어? 맞는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고.."
"아냐, 저 놈 아냐" 안주를 마구 던지며 "조용필 노래 망치지 마라!!"
(아마 이일로 씨는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강변에 가서 깡소주를 들이키며 괴로와 하다가
"그래..이왕 이렇게 된거 진짜 조용필처럼 해보자.." 결심! 조용필 테잎을 들고
산으로 가서 거기서 엄청난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조용필의 모창가수라도 하려면 입산 수도는 기본? ..^^)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테잎에 담아 동네 아주머니 한테 들려주니 조용필인 줄 암.
조용필의 머리를 해준다는 헤어 디자이너를 찾아가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안경도
쓰고..
쨔쨘~ 업소에 나가자 (이름도 주용필로 바꾸고) 이때부터는 밤무대의 슈퍼스타!
그렇게 돈도 벌고, 안정도 되갔지만 자신의 이름이 불리 울 수 없는 현실에 늘
안타까움과 돌아 가신 부모님 산소를 찾을 염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유명해지자 이시죠? '슬픈 조용팔의 노래" 인가 모노 드라마로 연극이 대학로
에 올려졌던거..호평을 받으며 무려 4개월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합니다
(하긴 저도 가서 봤으니까요..^^ 물론 주용필씨의 이야기구요)
그러가 1999년 주용필에게서 벗어나고자 음반 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었다가 돈
다 날리고..결국 2000년..그는 다시 이일로에서 주용필로 돌아 왔습니다.
"조용필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덫같다.."
어쩌면 자신의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그의 삶이 안타깝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에게
실체가 없는 조용필의 그림자로서 살고 있지만 그 인생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리
라 생각됩니다.
아쉬운 것 하나는...
노래 소리가 너무 비음이 많이 들어 가 있어요. 비음이 섞인 것이 용필님의 특징이라
모창할때 사람들이 그 부분을 강조 하지만 그건 겨우 일부에 지나지 않는디...ㅠㅠ
이일로씨는 자신의 위지와는 상관없이 주용필이 되었지만...어쩌겟습니까..
그것이 그 분의 팔자인가 보죠...(허구 많은 가수들 중에 그래도 주용필이라..가장
당당하고 좋지 않습니까?..^^)
주용필씨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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