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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발행된 책이니까 시간적인 갭을 감안하셔야 되겠네요..
조용필- 인생은 후회의 연속
왜 그가 웃을때도 웃는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걸까. 누군가 커트코베인에게 왜 그렇게 당신
은 우울하고 울적해 보이냐고 묻던 기억이 난다.
지난날의 녹음으로 피로해진 그와 악수하는데, 손대는게 수류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웠
다. 그는 너무 많이 노출됐고, 너무 많은 전선에서 살아 남았는데, 이렇게 예민한 호기심으
로 세부를 살펴보려는 노력이 무슨 소용 있나. 내자신이 먼저 포위된 느낌이 든다.
"피곤해요. 아, 잠은 네시쯤 잤나?"
그가 지치면 그 얼굴은 아주 긴 시간동안 그가 만들어 놓은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비틀즈나 롤링스톤즈 같은 그룹에서 제일 기타을 잘 치고 싶었을 뿐인 68년, 미8군에서 대
타로 노랠 시작한, 간략하고도 주된 야심을 숨겼던 애트킨즈의 기타리스트가 그렇게 30년을
기념하기 위한 베스트 앨범을 녹음 중이었다.
30년, 그가 확보한 음조가 응급처치가 아니라 그대로 자신이 돼버린 서사적인 시간. 그건
바다소리처럼 형언할 길 없지만 그게 뭔지 누가 말할수 있을까. 여러 세대를 횡단해 오면서
우리의 위안 중의 위안이었던...
강헌이 그를 두고 트로트에서 스탠더드 팝, 로큰롤, 댄스뮤직, 민요와 동요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대 이래 한국 대중음악의 문법을 결산한 아티스트라고 썼던 생각이 난다. 최고의
찬사는 전치사처럼 이 대중가수의 데이터베이스를 따라다니고.
"본인은 자기 얼굴을 잘 모르는 거예요. 평가는 다른사람이 해주는 거고 또 후에 하는 거예
요. 난 그런 생각 해본적도 없고, 그냥 내 길을 가는 거니까. 조용필은 닉네임이라고. 방송
에 나가도 슈퍼스타, 국민가수, 작은거인, 그런 말들이 너무 싫은거 있지. 겸손해서가 아니
라 항상 미완성이라고 생각하니까, 모자라요. 해도해도 끝도 없는거고, 끝이라는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음악은 순간의 아이디어예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추억할수 있는것, 어떤 결정
체도 아닌 상태에서..."
옛날에 그의 다음 무대에 선 가수들은 너무 위축되었다. 청충은 박수도 안쳤다. 얼마전 콘
서트에서 그는 요즘 젊디나 젊은 가수애들과 함께 섰었다. 새 기풍의 흐름속에 묽어져버린
건 아닐까, 옆사람들의 근심을 바라보면서.
"사실 내가 <창밖의 여자>,<고추잠자리> 할때는 걔네들, 세상에 없던 애들이라구요. 나한테
불모지라구, 그런데도 내가 신청곡,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바람의 노래>를
다 하는 거예요. 요즘 어린 세대들 음악보단 사람을 더 좋아하는 걸 음악으로 맞서야지요.
난, 그래요.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용기라고 생각해요."
어쩌다 음악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포화상태의 소음, 아무데서나 뺑뺑이를 도는 캬바레 쓰레
기 음악처럼 돼버렸을까. 텔레비젼을 켤때마다 고어텍스를 입고 떼로 몰려나오는 어린 것들
은 보기도 겁난다. 요즘 노래가 갖지 못한 속성들을 아쉬워하면서 열거하다보면 그렇게 조
용필이 생각나는데, 대한민국적 대중가요 시스템 속에서 그의 처지가 가증스러운 나이주의
에 속하게 된 걸까? 그가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건 그다지 이른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재즈 뮤지션들은 음악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고들 한다. 그는 용기를 통해서라고 말했다. 수
단으로서의 용기, 고전적 가치가 주는 단순한 아름다움. 그는, 생의 볼륨이라기보단 음악적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것 같다. 한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도록 짜여진 것처럼. 그건 어떤 의
미의 외과적 정확성이다.
"난 완벽한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난 내 자신, 그렇게 좋은 평을 하지 않아요. 자신
만만해야 되는데, 성격이 그렇지 않아요."
자연인 조용필의 특징은 어휘선택에서 드러난다. 단순성은 그가 무의식 가운데 밟는 지뢰
다. 하지만, 복잡한 신념, 마음을 어지럽히는 추상 대신, 무력한 아이 같기도 하고, 힘센
마초를 보는것도 같고, 소주 열잔의 관용을 보는것 같기도 하고, 좋은 눈과 나쁜 분, 소년
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 과거에 이끌리는 마음과 미래를 향한 마음. 나는 가수와 영웅사이
에서 줄을 탔던 그 얼굴을 쳐다본다. 왜 언제나 그의 가장 값진 친구는 그 자신 같을까? 그
는 자꾸만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긴장의 연속 아닙니까? 습관적으로 피는거죠. 난 어렸을 때 가수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그냥,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고, 대역에서 출발했다고. 어느날 베이스 기타 싱어가
없어서 내가 대신했고..중략.."
이 이야길 몇번째 하는걸까. 나는 그가 했던 대답들의 숫자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도 음악말고 신중하게 선택된게 뭔지 알수없다. 어쨌든 음악말고는 바케트 하나살줄 모르는
것 같은 단순한 서정 속에서 그는 나이를 먹었다.
"그래요. 다른건 할수가 없어요. 음악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보면 이미자씨 패티김씨 가
끔씩 활동 하시잖아요. 전 현역으로 활동한다구요. 그래서 옛날가수란 소린 안듣는 거죠.
그냥 조용필로 남아 버리니까. 왜냐하면 아마 혼자 유일하게 일을 계속해 왔으니까. 어떤
가수가 50세까지 한 전례가 없는거야. 산다는건 릴레이..나는 개척해 가는 거예요."
그의 직업적 삶은 성공했다. 그가 참된 뮤지션이란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노랠 왜 하는지
아니까. 또 가끔 세상은 한사람 손에 바뀌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개인적인 삶은 모르겠다.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행복하다고 포만해 하는 그 사이로 이 고독한 성분은 뭐지? 왜
그는 늘 금욕적인 골목안에서 서성거리는 것 같을까?
"보면 고독한 사람 같대요. 그렇게 보인대요. 어느날엔 또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얘길 하는
거야. 결혼후에 이젠 매력이 없다고. 또 누군가 결혼하고 나서 행복한 줄 알았는데 굉장히
고독해 보이는 것 같다고.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마 음악을 하면서 표정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근데, 나 옛날에 이혼하고 혼자 살 때도 외롭단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외로움을 즐기는지도 모르지. 난 2세를 가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어
요. 동기는 저도 몰아요. 암튼 2세는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그의 윤리로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걸로 박제 돼버리리라는 두
려움은 그와 상관 없다. 아이는 다른 방문객들을 위한 요람에 누워 있을뿐.
"난 굉장히 단순하게 살아요. 음악하는 사람들은요. 삶에서 쾌락을 느낄땐 노래 부르는 순
간예요. 또 켠디션이 좋아서 어느날 녹음이 잘 될때, 차로 막 달릴때-제가 좀 밟는 편이거
든요. 옛날에는 고속도로에서 많이 잡혔어요.-가정적으로 와이프가 어떤 땐 유난히 이뻐 보
일때가 있어요. 그때 그런 행복을 느끼고, 그게 전부죠."
가끔 어떤 종류의 삶의 외면까지 마음을 붙잡는다. 굳이 옆에 노련한 익살꾼들을 끌어 모으
지 않아도...
"사람앞에 나서는 걸 꺼린다기 보다는 수줍음이 많은 편예요. 내성적예요. 옛날에 막 나 좀
봐줘, 이런 친구들도 있더라구. 난 그걸 못해. 무대에선 오리려 편하지만, 사적인데 사람들
많은데는 되도록 피해요."
그가 일으킨 반향은 타악처럼 두배나 더 컸지만, 대한민국 안에서 그의 음악적 크레딧은 불
피요하다지만, 그는 스타들의 고통된 이슈, 푸념대신 무심함을 발산한다.
"그냥 음악인으로 남았다는 평가면 좋겠어요. 얼마까지 더할진 모르지만, 스스로 과감하게
물러날줄도 알아야 돼요. 미국에서 어느 유명한 가수가 TV에서 노래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노래가 안 돼. 내가 너무 좋아했는데. 안 불렀으면 차라니 나았을 텐데. 내가
다음에 TV 나와서 안되는 노래 하면 얼마나 얼마나 실망스럽겠어요? 아, 난 저렇게 까지 하
면 안되겠다...."
누군가 그의 찬란한 레테르 뒤에 소울은 약화되었다던 생각이 난다. 조용필이 이젠 위험을
감수하는 걸 두려워 한다고. 그러나 그는 추운 밤에 독주나 마시면서 겨울이 지나길 기다리
는 부류가 아니다.
"내가 노래를 불렀지만 그건 대중의 것이예요. 토크쇼하는 한선교가 형 <킬리만자로의 표
범>은 내노래야. 그 가사 내용이 자기래. 그런 줄 알래. 그게 맞는 거예요."
대중가요는 길게 남는다. 하지만 온통 개인적 번민과 슬픔 투성이다. 물론 대한미국 유행가
때문에 머리에 충을 쏜 사람은 없다. 하긴, 질펀해지고 싶은 뿐인 관객에게 복잡한 이념이
무슨 소용있나.
"난 레코드를 만들어요. 그것 자체가 기쁨이죠. 후세 사람들도 내 목소리를 영원히 들을수
있는거 아녜요? 음악이라는 것 자체를..."
레크드를 만드는 기쁨, 이 키작은 사람을 유지하는건 그것이면 충분하다. 연민을 주는 조그
만 사람의 얼굴로 다가와 노래의 피부위를 산책했던 이 사람은 마지막 전장에서 죽기를 고
대하는 직업군인 같다.
"제가 집착이 강하단 소릴 많이 듣는 편예요. 걱정이 있다면 내 역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
가. 죽고 난 후에 조용필을 평가받아야 되잖아요. 지나간건 지나간 거란 말예요. 지금부터
내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단 말예요. 10월달쯤 음반을 낼 거예요. 21세기로 넘어가 하나의 첫
작품이 될 수 있도록."
20세기 21세기 양세기를 사는건 행복한 일일까. 그말을 들으니 자식이 다 자라는걸 보기전
에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부모가 된 기분이다. 그건 가버린 흔적 대신 그를 마중나온
다른 길.
"우린 계급이 없어요. 그게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딴사람보다 나이를 그렇게 안먹는 것 같
아요. 하지만, 항상 난 계산을 해요. 내가 몇살 정도에 죽을건지, 우리 마누라하고 앞으로
내 남은 기한이 몇년일까. 내가 칠십에 죽는다 치면 22년 남았죠. 그럼 한 4년정도 병원에
있다면 18년 정도밖에 안 남았을 거 아닙니까 그쵸? 그런 남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매달려 있는 시간의 폭력. 삶을, 너무 자주 우릴 간섭하는 불의한 무엇. 하지만 그
는 다루기 힘든 시간을 조종하면서 규모가 큰 항해 모자를 다시 쓴다.
"하지만 행복해요 만족을 못 하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은 자꾸 가지고 싶어요. 난 후회가 유
난히 많은 사람일지 몰라요. 인생은 고뇌의 연속, 후회의 연속. 하지만 난 음악이 지겹단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 없어요."
하나 말고 다른걸 생각할 수 없다면 어떻게 즐거울 수 있지?
그는 피로한 눈으로 창문 블라인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순결함만을
지니고 방문하는 것처럼 푸르스름한 프레임 안에 갇힌 채 카메라를 향해 순수하게 웃어보이
던 그 옆보습을 보면서 난 생각했다. 음악은 포용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그는 안지도 서지
도 싸울수도 살 수도 없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우리도 같다고...
헤어질 때 그는 말했다.
"나중에 대포 한잔 해요."
나는 웃어보였다. 그것말고 다른건 할수 없는 것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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