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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은 1970년대 중반에 정식으로 대중음악계-엄밀히 말하면 오버그라운드-에 나서게 됩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그의 영원한 히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고 이미 그 전의 가수들이 그랬듯이 그의 활동은 대중들에게서 잊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활동금지가 풀리면서 80년대 최고의 인기곡으로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창 밖의 여자'를 통해 다시금 오버그라운드의 전면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새삼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논하는 것은 그의 음악적인 면에서의 업적을 이야기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단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의 음악적인 지형도일 것입니다. 앞서 불미스런 사건이라 일컬었던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일련의 대중음악내의 뮤지션 그들 그룹들 중에서도 음악-엄밀히 말하면 한국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한 대수라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한국음악계를 떠난 이후, 그리고 김민기와 양희은이 정치적인 문제로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이후에 미국에서의 경우와는 다르게 서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면으로 변질되어왔기 때문입니다.-을 주도하던 그룹들과 신중현을 위시한 락뮤지션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한국에 있어서의 대중음악은사실상 오로지 TV 의 쇼 프로그램에 의한 쇼 프로그램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음악의 전통을 보다 약하게 이어가고 있던 젊은 뮤지션들이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것은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일시적인 반발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시각인 듯 합니다.
사실상 그의 데뷔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던 조용필에게 그의 실질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는 80년의 활동재계는 그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음악이 어때야하는지를 자각하게된 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아무리 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의 음악을 하나의 일직선상에 놓고 본다고 하면 상당히 많이 벗어나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의 재등장은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음악의 정리와 락음악의 전면에로의 부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년배의 뮤지션들 대부분이 무대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게 되었지만 당시의 대중음악의 풍토였는지 아니면 한국 대중음악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일단 오버그라운드로 나서게 되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60-70년대의 락음악과는 동떨어진 음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락음악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재등장과 더불어 락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함으로써 반대의 경로를 통해 락음악을 대중화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은 당시에 락음악의 전성기를 보내고 뉴웨이브 음악이 주도하려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말의 존 레넌의 사망으로 인해 그들은 다시금 락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게 되었으며 그러한 대중의 복고적인 취향은 1982년에 다시금 락음악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의 한국에서의 상황은 조용필의 승승장구로 인해 락음악이 비로소 오버그라운드에 등장하게되었고 비로서 한국의 대중들은 매니어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으로서의 락음악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 .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점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인해서 해외의 대중음악과 한국의 대중음악간의 시간적인 격차가 비로소 이 시기를 기점으로하여 상당히 좁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제가 첫 번째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조용필의 등장으로 한국에서의 락음악이 그 위치를 오버그라운드내에서 확보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과의 격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의 한국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행동들을 거듭했나를 생각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새삼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논하는 것은 그의 음악적인 면에서의 업적을 이야기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단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의 음악적인 지형도일 것입니다. 앞서 불미스런 사건이라 일컬었던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일련의 대중음악내의 뮤지션 그들 그룹들 중에서도 음악-엄밀히 말하면 한국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한 대수라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한국음악계를 떠난 이후, 그리고 김민기와 양희은이 정치적인 문제로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이후에 미국에서의 경우와는 다르게 서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면으로 변질되어왔기 때문입니다.-을 주도하던 그룹들과 신중현을 위시한 락뮤지션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한국에 있어서의 대중음악은사실상 오로지 TV 의 쇼 프로그램에 의한 쇼 프로그램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음악의 전통을 보다 약하게 이어가고 있던 젊은 뮤지션들이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것은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일시적인 반발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시각인 듯 합니다.
사실상 그의 데뷔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던 조용필에게 그의 실질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는 80년의 활동재계는 그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음악이 어때야하는지를 자각하게된 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아무리 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의 음악을 하나의 일직선상에 놓고 본다고 하면 상당히 많이 벗어나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의 재등장은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음악의 정리와 락음악의 전면에로의 부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년배의 뮤지션들 대부분이 무대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게 되었지만 당시의 대중음악의 풍토였는지 아니면 한국 대중음악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일단 오버그라운드로 나서게 되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60-70년대의 락음악과는 동떨어진 음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락음악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재등장과 더불어 락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함으로써 반대의 경로를 통해 락음악을 대중화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은 당시에 락음악의 전성기를 보내고 뉴웨이브 음악이 주도하려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말의 존 레넌의 사망으로 인해 그들은 다시금 락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게 되었으며 그러한 대중의 복고적인 취향은 1982년에 다시금 락음악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의 한국에서의 상황은 조용필의 승승장구로 인해 락음악이 비로소 오버그라운드에 등장하게되었고 비로서 한국의 대중들은 매니어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으로서의 락음악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 .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점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인해서 해외의 대중음악과 한국의 대중음악간의 시간적인 격차가 비로소 이 시기를 기점으로하여 상당히 좁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제가 첫 번째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조용필의 등장으로 한국에서의 락음악이 그 위치를 오버그라운드내에서 확보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과의 격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의 한국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행동들을 거듭했나를 생각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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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추위 속 열 받는 [중앙일보] - 뭐 조용필을 상품화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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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못참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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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 트롯트로 몰아넣는 근본이유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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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한 락 음악 평론가의 글-조용필의 음악사적 의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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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시사 프로그램 2580 조용필님 트롯 방송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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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8 | 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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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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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9 08: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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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9 09:08:50
짹짹이
2001-12-19 10: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