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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음악은 나의 전부 지금은 공연만 생각”

  
ㆍ24일 데뷔 40주년 콘서트

텅 빈 경기장은 거대한 ‘공(空)’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놀라는 거지.” 머잖아 이 공간은 5만여명의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열광하는 ‘집단 광기’의 현장으로 바뀐다. 한 자리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객석에서 건너편 객석의 광활한 풍경을 보며 경악한다는 것이다. 오는 24일 열리는 40주년 콘서트 준비로 바쁜 조용필(58). 그를 만난 건 콘서트 관련 2번째 전체 스태프 회의가 열리던 날이었다. 공연 준비로 고단한가보다. 입술이 부르터 있다. 봄 햇살만이 가득한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내려다보며 그는 건넨다. “지금 이렇지, 밤에 사람이 차면 장관이에요.” 그의 눈 앞엔 이미 ‘조용필’을 연호하며 눈물 흘리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40주년 콘서트는 연말까지 전국과 미국에서 20여회 마련된다.



40주년 콘서트를 앞두고 열린 스태프 회의에서 조용필의 관심은 온통 ‘수중공연’ 대비와 높은 수준의 음향에 쏠려 있었다. 엄청난 폭우 속에 치러진 지난 3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염두에 둔 듯했다. “다음번에 다시 논의 하자”는 스태프에게 “그건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마무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성일기자>

조용필은 알려진 대로 눌변이었다. ‘말투’가 어수룩한 것이 아니라, ‘말’을 풀어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 같았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조용필 인간 탐구’라 적은 기자의 질문지 제목이 무색해졌다. 자신이 걸어온 음악 인생에 대한 어떤 설명이나 의미 부여도 좀처럼 하지 않았다. “좋아서” “하고 싶으니까”라는 식의 답변 행렬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답변은 역설적으로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부각시켰다. 원대한 포부나 명예욕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운명처럼 이끌려온 외로운 음악 인생 40년. 주절주절 설명은 사실, 그의 몫이 아니다.

“40년을 이끌어온 힘? 팬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게 조용필의 힘이에요. 그들이 없으면 벌써 그만뒀을 테지요. 내 내면적으로는 음악을 좋아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합니다. 아무리 팬들이 있어도 제가 싫으면, 끌려갈 수는 없어요. 제가 좋으니까 앞장서는 것이지요.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 음악이 전부라고 해도 누가 부정하진 못할 거예요.”

음악을 하는데 ‘좋아서’라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의지는 없다. 그것도 40년이나 변함없이 그 ‘사랑’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30여년 전인 1977년 대마초 파동 때도 이런 말을 했다. ‘톱 싱어가 되기보다 음악하는 사람으로 계속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옛날부터 난 음악이 좋아서 했던 거지, 음악을 통해 유명인이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이름이 알려져 그런 일이 생기고, 음악을 못하게 되니까. 세상에 알려진 게 원망스럽더라고. 그래서 했던 얘기죠.”

의지만큼이나 그의 음악은 자유로웠다. 조용필은 80년대 초반 주류 가요계 스타인 동시에 밑바탕에 록 음악이라는 힘을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가수로서 유례없이 팝, 록, 국악, 트로트 등 수많은 장르를 섭렵했다. 한창 브로드웨이 등지에서 뮤지컬의 재미에 빠져있다고 하더니 지난 18집 앨범에선 뮤지컬과 오페라의 흔적을 보이기도 했다.

-젊은 사람 입장에서 조용필 음악을 들어보면 ‘어, 이런 것도 조용필 음악이었어? 이것도?’ 하며 놀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정의한다면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저는 원래 연주인 출신이고, 음악이란 음악은 다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팝, 컨트리, 솔, 록, 국악, 동요까지 다 해봤죠. 미 팔군 무대에 있을 땐 보통 100여곡의 레퍼토리를 갖고 있었어요. 그 때는 이미테이션(모방)하는 거니까. 이탈리아 칸초네, 프랑스 샹송도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올 만큼 다양한 음악이 흘러다니던 시기였죠. 그러고 나서 일반 무대로 나왔을 때, ‘그 때 했던 걸 다 해보자,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고 했어요. 그냥 순수하게 연주인으로서 이런 거 저런 거 다 경험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음악은 (장르와 관계없이) 들어서 좋은 게 명곡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접근했던 거죠.”

수많은 ‘이미테이션’에서 비롯한 순수한 경험에의 의지. 최근 충북과학대학 생체신호분석연구실 조동욱 교수는 ‘조용필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이 어우러진 4부 합창과 같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의 목소리에는 고·중·저주파의 음이 고르게 섞여 있어 완벽한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것이다. 주파수와 같은 어려운 얘기로 굳이 분석하지 않더라도, 그의 목소리가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연습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고된 연습의 지난한 세월이 스칠 만도 한데, 동요가 없었다.

-‘한오백년’을 들은 후 탁성을 내고 싶어 명산을 돌아다니며 창을 하고, 발성 연습을 했습니다. 피를 쏟고나서야 원하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너무 영웅전설 같은 이야기인지라,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하하하하! 불어나고, 불어나서 나온 얘기지. 노래하는 데 무슨 피를 토합니까. 목이 쉬어서 가래에 피가 조금 섞여나온 정도겠지(웃음). 제 소리가 미성이었어요. 비틀스, 롤링스톤스, 로드 스튜어트 이런 사람들 노래를 하려면, 아무리 해도 나에겐 안 어울리는 거야. (목소리를) 갈아서 허스키로 만드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죠. 발성 연습부터 혼자하다보니 소리가 변하더군요. 그러고 나니 (그들의 노래가) 좀 어울리더라고. 연습하면 웬만한 것은 다 된다는 걸 그 때 깨달았지요.”

-요즘도 줄곧 노래 연습을 하신다던데요.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하진 않아요. 대신 목소리를 건강하게 유지 하려면 꾸준히 연습을 해야지요. 운동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지금의 목소리를 잃지 않을 만큼만,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합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요즘 그 길을 이어 받을 만한 후배가 보이시는지요.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기획사의 거대 시스템에 의해 가수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수들 평 하는 건 딱 질색입니다. 시대적 상황이 있는 거겠지요. 음악은 유행입니다. 시대에 따라 음악적 색깔, 톤, 종류 등이 다 있는 거예요. 대중은 늘 틀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좋은 음악은 지금의 히트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재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지나치게 넓은 집에서 홀로 산다. 5년 전 사별한 아내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아내와 관련해서는)외로운 게 내 운명이고 팔자”라고 말한다.

-아내와 별개로, 한 인간으로서 외롭다 느끼진 않는지요.

“제가 외롭다고 생각하면, 정말 외로울 수 있어요. 그러나 의식하지 않고 살면 외롭지 않아요. 자기를 자꾸 외롭다는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되면 굉장히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게 떳떳한 사람인데요….”

-지금 음악인 조용필, 인간 조용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공연. 공연밖에 다른 건 생각을 안 합니다. 공연을 앞두고 술은 입에도 안 댑니다. 담배도 한 3년 전에 끊었고요. 지금은 무대를 어떻게 꾸미고, 어떤 공연을 할지만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어요. 그렇게 사니까 잡생각이 안 나요. 사람도 잘 안 만나고, 일만 하는 사람이라. 아까 집(에서 홀로 사는) 얘기도 했지만, 그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가사가 머릿속에 새겨졌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은 ‘더 히스토리,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킬리만자로의 광활하고 공허한 설산을 40m 길이의 탑 사이에 설치된 스크린에 재현한다. “음악은 결국 대중의 마음입니다.” 그는 오늘도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마음속 킬리만자로를 오른다. (02)541-7110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조용필”을 연호하며
눈물 흘리는 수만명 팬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저 좋아서… 하고 싶으니까…
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운명처럼 이끌려온
외로운 음악인생 40년

“음악은 결국 대중의 마음”
작은 거인 조용필, 그는
오늘도 고독과 악수하며
마음속 킬리만자로를 오른다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 내손안의 모바일 경향 “상상” 1223+NATE -

출처: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191731585&code=9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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