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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드라이버200m, 3번 아이언 200m 날리는 싱글골퍼
얼마전 모 기획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용필씨 35주년 기념 책자를 내려고 하는데 글 좀 써주세요. 조용필씨를 회고하며 라는 내용으로요."
전화를 받자마자 정중하게 사양을 했다. 혹시 글을 잘못 써서 피해를 받거나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용필 선배와 난 이미 5년 전에 서로가 곤란한 상황에 맞닥트린 적이 있다.
평소에 존경해왔고 그의 노래에 빠져 있던 난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시상을 옴긴 적이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시집이 '조용필 그대의 영혼을 빼앗고 싶다' 였다.
그 당시만 해도 연예인을 대상으로 시집을 낸 것은 국내 최초였다.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각 신문사 지면에 '화제의 책'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후랭크시나트라가 문학적으로 다뤄졌다면 한국에서는 조용필을 주제로 한 논문과 시집, 수필집이 나와 이미 후랭크시타트라를 능가하는 문학적 고찰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뜻하지 불행이 닥쳤다.
시집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그만 조 선배의 사진을 표지로 사용하는 바람에 소속사와 문제가 된 것이다.
나 역시도 조 선배의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순수한 문학적 접근을 원했던 것이지 화제의 책으로 평가받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소속사와 출판사간의 팽팽한 싸움에 괴로운 심경을 뒤로하고 양측의 중재자로 나서야 했다.
"야! 니가 오히려 날 보호해줘야 하는데 이럴 수 있어"
조용필 선배는 섭섭함을 토로했다.
"자네 돈벌려고 기획한 출판물 아냐?"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굴욕적인 말을 들었다. 오히려 출판사가 판매를 위해 표지 사진을 조선배로 해놓고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모든게 싫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나의 순수성이 이렇게 깨지는 구나싶어 우울했다. 내 순수함에 대해 세상은 내편이 아니었다.
조 선배는 자기 작품이 좀더 문학적으로 완성되기를 바랬고 출판사는 상품성으로 더 발전하기를 바랬다.
'조용필 그대의 영혼을 빼앗고 싶다'는 이렇게 해서 아주 짧은 생을 마감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내게 조용필 선배와 관련한 원고청탁은 사실 적잖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의 간곡함 때문에 시집에 실려있는 시 3편과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조용필'을 주제로 글을 써준바 있다.
'조용필!'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자신의 노래를 자신의 영혼처럼 사랑한 사람, 주어진 3분의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1989년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조용필 특집 프로그램 리허설을 본적이 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조용필 선배는 24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써야할 만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서도 리허설이라고 해서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마침 '서울서울', '모나리자' 노래를 맞추고 있었다. 다른 가수들은 대충 악단과 맞추고는 사라졌다. 그러나 조용필 선배는 틀렸다. 노래 중에 몇 번씩 악단을 중단시키고 잘못된 음을 잡아내 가면서 마지막 멜로디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머리가 스스로 숙여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또 한군데서 찾아볼 수 있다.
골프다.
그는 시간이 나면 골프장을 찾고 싶어하고 찾아간다. 그가 가장 많이 찾는 골프장은 안양베네스트 골프장이다. 남들은 어렵다고 혀를 내두르는 안양베네스트에서 보통 70대 후반에 놀라운 골프실력을 보인다.
하긴 1년 만에 싱글 실력을 갖출 만큼 노래 이상의 재질을 가지고 있다. 골프 역시 노래에서 보여주는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의 골프는 화려하지 않다. 남들처럼 2백5, 6십야드를 날리는 파워플 한 샷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드라이버를 잘 날려야 200미터 정도의 거리를 보인다. 반면에 아이언 3번으로 2백미터를 보내는 장기를 가지고 있다.
아이언의 정확도와 비거리는 한국의 박남신이라고 할 만큼 위력적이다. 여기에다 2퍼팅이상은 허용하지 않는 숏게임 실력은 프로급 수준을 보인다. 그린 주변서의 롭웨지 사용은 현란스러울 정도다. 그 어렵다는 안양베네스트 그린 주변서의 어프로치는 가끔 퍼터가 필요 없을만큼 정확하다. 퍼팅 실력도 대단해 투 퍼팅을 용납지 않는다.
코스공략은 매우 정교하며 섬세하다. 반면에 골프장에서의 모습은 자연을 닮아 있다. 해맑은 웃음을 항상 띠고 있으며 가끔 던지는 농담도 즐겁다. 물론 퍼팅 할 때 '종현아!'하고 이름을 부르며 장난도 즐긴다.
필드에서 화를 내는 것을 잘 볼 수가 없다. 차분하고 넉넉해 보이는 인상 그리고 웃음으로 인해 캐디에게도 인기만점이다.
가끔 언니들의 간드러진 '굿 -샤아앗' 소리를 콧소리를 내가면서 흉내 낼 때는 모두가 박장대소를 할 만큼 분위기가 좋아진다.
그에게 있어서의 골프는 고단한 삶을 푸르게 만들어 주고 노래에 대한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곳이다. 그는 안양베네스트골프장의 4계를 좋아한다. 안양베네스트는 금강산의 변화무쌍한 계절의 변화만큼 아름다우며 명징한 계절을 갖고 있다.
골프클럽에 대해서도 비싸거나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가 쓰는 아이언은 무려 2십년 전에 유행한 미즈노 머슬백 아이언이다. 한번은 P사제품 티탄페이스와 머레이징 소재 아이언을 추천한 적이 있다. 몇 번을 시타 했지만 역시 미즈노 구형모델이 좋다며 소재와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았다.
6년전 슈퍼땅콩 김미현과 조용필 선배를 필드 맞대결 시킨 적이 있다.
코리아CC에서 김미현, 조선배, 나 셋이서 라운딩을 했다. 김미현은 마침 전 대회에서 우승을하고 국민가수와 플레이를 한다는 기분에 표정이 맑아 보였다. 그 당시만 해도 김미현은 골프 잘 치는 국내 프로선수정도로 알려져 있었을 뿐 지금과 같은 유명세는 없을 때였다.
"김미현 프로 곧 세계무대서 박세리처럼 통할 선수거든요. 오늘 플레이해보면 알지만 대단한 프롭니다"
조용필 선배에게 김미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첫 홀서 그녀의 드라이버는 훅이 나며 오히려 조 선배보다 적게 나갔다. 첫 홀서는 그러래니 했지만 두 번째 홀도 그랬고 5번째 홀까지 조선배가 계속 성적이 앞서나갔다.
"야 진짜 프로 맞아?"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프로를 이기고 있다는 것이 기분 좋게 다가온 듯 싶었다.
"아주 다부지네"
조 선배도 흡족스런 표정이었다. 김미현은 정말 편안하게 라운드를 할 수 있어 좋았다며 밝게 웃었다. 라운드 결과는 조선배가 1타 차이로 이겼다.
'조용필 선배 75타, 김미현 76타'
"그렇게 쳐서 우승하겠어" 조용필 선배의 조크였다.
"게임하면 달라져요"
김미현이 받아쳤다.
그것을 인연으로 김미현은 조용필 선배 집에 초대 됐다. 조선배가 운영하는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골프장 마킹 사인볼과 모자 등을 선물로 받았다. 이후 김미현의 미국 진출에도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골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아마도 노래 다음이 아닌가 싶다. 조용필 선배와 한번 골프이야기를 하다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가끔 방배동 조 선배 집을 찾아가 골프이야기를 하다보면 그의 해박한 골프이론과 선수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를 능가할 정도다.
집 현관 입구에다 프레드커플스와 같이 찍은 액자를 걸어 놓을 만큼 골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의 꽃은 드라이버로 생각한다. 그러나 골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드라이버는 거품일 뿐 진정한 꽃은 바로 숏 게임이라고 말 할 것이다.
드라이버가 200미터 나간다 고해서 쉽사리 덤볐다가는 아이언의 정확도와 2퍼팅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숏 게임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가 골프를 칠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위대하다. 그와 응접실에서 앉아 이야기 할 때가 가장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일까 그는 잊지 못한 우리의 우상인 것이다.
조용필 선배의 노래를 들으며 지은 시
시집'조용필 그대의 영혼을 훔치고 싶다' 중에서
1.
내 청춘의 빈잔
너는 흐린 날마다 江으로 나갔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江으로 갔다.
그 빛이 그 빛이고 그 색이 그 색이던
그 소리가 그 소리던 江에서
그 표정이 그 표정인 사람들과 마주치고는
버릇처럼 바다로 간다.
江으로 난 논둑 길로 꽃상여 꽃잎처럼 날려
마을 밖으로 떠난다.
"떠난다는 풍경이 외로워서일까"
갈잎 몇 개 촉촉이 적시며 날리는 눈발
사는 게 늘 죽음을 확인하면서부터라던
선친의 탁한 목소리는 휘젓는 막걸리 끝에
살아나
쓸쓸히 찰랑이던 삶과 죽음
근근히 이어지는 잔기침 속으로
또
목을 죄며 들어앉는 목숨들
나는 안다. 이 시대가 정해 놓은 가지 안에서
탈락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외로운 투쟁을
늘 월급을 받는 날엔 등이 시리다.
불안한 삶 막걸리에 떠다녀
이유도 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의미를
나는 흐린 날마다 강으로 간다.
바람 부는 날에도 江에가 선다.
江 아래 푸르러 가는 무거운 소리
江은 내게 기준도 주지 않고 흘러만 간다.
江은 내게 잠시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눈(雪)을 녹이고 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눈은 江에 쌓이지 않는다고.
2.
슬픈 베아트리체
며칠째 비만 내렸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므로 어둠 안에다
묻어 놓기로 했습니다.
새벽마다 깨어나는 그리움만으로도
왜 가슴이 답답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설렘이 있기에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기억하고픈
이 만큼 흘러 각인된 그리움들을 정렬해 봅니다.
강물은 표시도 없이 흘러가
반짝이는 바다와 아프지 않게 섞입니다.
가능한 한 사랑도 아프지 않게, 멍들지 않게
섞여 흘려 보내려 합니다.
표시도 없이 흘러가는 아! 사랑의 흔적.
출처: http://tongdocc.co.kr/lesson/content.asp?idx=584&GotoPage=1&Topid=8&Subid=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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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안젤라
2004-12-08 01:47:02
빨랑 물리치세요^^
베네스트 골프장 바로 옆에 사는데 여직까지 필님을 만난 적이 없네요.
흠~~ 날 잡아서 한번 기다려 볼까나... ㅎ ㅎ
차가운 열정
2004-12-08 01:52:35
드라아브에 미련을 두지 않음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찾지않고,
긴 아이언에 강함은 깊은 열정을,
숕게임에 능함은 절제된 섬세함을 가지신 거지요.
열심히 노력하여, 언젠가 한번...
필사랑♡영미
2004-12-08 02:34:31
찍사님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아지
2004-12-08 03:07:52
에고고 옛날 고딩때 생각이 절로나서 웃음이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