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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씨가 부른 <허공>을 만드실 때 에피소드가 있었다면서요?
1979년에 10.26이 터졌어요. 그 다음에 유신정권이 무너지면서 서울의 봄이니 뭐니 하면서 국민들이 민주화에 대해서 열망을 하던 때였어요. 정부 역시 민주화에 대해서 국민들과 약속을 했었고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민주화가 되는가 보다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느닷없이 12.12, 5.17 같은 군사쿠데타가 다시 일어나면서 그토록 국민이 열망하던 민주화가 허공에 묻혀버렸어요. 그래서 ‘허공’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 유신정권 때 끌려가서 고초를 당한 적이 있어요. 저 역시도 민주화를 열망했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 열망이 허공에 묻히니까 뭔가 쓰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허공’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썼어요.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민주...설레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하지만 ‘민주’라는 말을 썼다가는 당연히 심의도 안 나올 거고 끌려가서 고생할 거고 그래서 ‘민주’ 대신 ‘그대’라는 말을 넣었어요. 전체 문장에서 ‘민주’ 대신 ‘그대’라는 말을 넣으니까 절묘하게 숨겨지더라고요. 심의를 넣었을 때 머리 좋은 사람이 있어서 발견할까 봐 한편으로 조마조마했어요. 다행히 눈치 채지 못하고 심의가 나와서 조용필 씨한테 노래를 시켰어요.
민주를 그대로 바꾼 걸 우리 국민들이 이심전심으로 알아주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까지도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아이러니컬하게도 전두환 씨가 <허공> 노래를 더 좋아했어요?
당시에 통일의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는데 그 일로 인해서 5공 실세들과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룸살롱에 가자고 해서 다가갔는데 10명 정도 되는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허공>을 부르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10번쯤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앉아서 생각하기를, 내가 너희들의 등장을 가슴 치며 한탄 하면서 만든 노래인데 너희들이 뭣도 모르고 부르는구나 싶어서 내가 작사 작곡을 하기를 잘했다는 희열까지 느꼈어요. 대중예술도 작가가 사회적인 양심과 책임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특별히 인연을 맺고 있는 가수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저는 참 행복한 작곡가에요. 대한민국의 최고의 인기를 얻은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과 거의 작업을 다 했거든요. 작곡은 신통치 않아도 그런 가수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조용필 씨 같은 경우는 처음에 곡을 준 것이 <미워 미워 미워>였어요. 당시에 같은 회사에 저는 작곡가로, 조용필 씨는 가수로 소속이 되었는데 조용필 씨가 대마초로 인해서 고전을 할 때였어요. 그때 저한테 와서 가슴을 울리는 곡을 하나 달라고 하더라고요.
<미워 미워 미워>는 오래 전에 작곡해 놓고 숨겨둔 곡인데 피아노 앞에서 연습을 시켜봤더니 조용필 씨가 무릎을 치면서 이걸로 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1981년도에 굉장한 히트를 치면서 100만장이 팔렸어요. 그리고 일본에서 더 히트를 쳐서 트롯 가수 16명이 리바이벌을 했죠.
그 다음에 한 것이 <허공>이에요. 제가 조용필 씨하고 일을 하면서 느낀 건데 어떤 걸 가르친다든지 감정을 이쯤에서는 이 정도만 넣으라고 지시를 하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요. 또 녹음할 때나 공연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 혼신을 다하는 것이 가수로서 히트를 칠 수 있었고 장수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두 보기 ▼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767413
1979년에 10.26이 터졌어요. 그 다음에 유신정권이 무너지면서 서울의 봄이니 뭐니 하면서 국민들이 민주화에 대해서 열망을 하던 때였어요. 정부 역시 민주화에 대해서 국민들과 약속을 했었고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민주화가 되는가 보다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느닷없이 12.12, 5.17 같은 군사쿠데타가 다시 일어나면서 그토록 국민이 열망하던 민주화가 허공에 묻혀버렸어요. 그래서 ‘허공’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 유신정권 때 끌려가서 고초를 당한 적이 있어요. 저 역시도 민주화를 열망했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 열망이 허공에 묻히니까 뭔가 쓰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허공’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썼어요.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민주...설레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하지만 ‘민주’라는 말을 썼다가는 당연히 심의도 안 나올 거고 끌려가서 고생할 거고 그래서 ‘민주’ 대신 ‘그대’라는 말을 넣었어요. 전체 문장에서 ‘민주’ 대신 ‘그대’라는 말을 넣으니까 절묘하게 숨겨지더라고요. 심의를 넣었을 때 머리 좋은 사람이 있어서 발견할까 봐 한편으로 조마조마했어요. 다행히 눈치 채지 못하고 심의가 나와서 조용필 씨한테 노래를 시켰어요.
민주를 그대로 바꾼 걸 우리 국민들이 이심전심으로 알아주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까지도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아이러니컬하게도 전두환 씨가 <허공> 노래를 더 좋아했어요?
당시에 통일의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는데 그 일로 인해서 5공 실세들과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룸살롱에 가자고 해서 다가갔는데 10명 정도 되는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허공>을 부르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10번쯤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앉아서 생각하기를, 내가 너희들의 등장을 가슴 치며 한탄 하면서 만든 노래인데 너희들이 뭣도 모르고 부르는구나 싶어서 내가 작사 작곡을 하기를 잘했다는 희열까지 느꼈어요. 대중예술도 작가가 사회적인 양심과 책임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특별히 인연을 맺고 있는 가수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저는 참 행복한 작곡가에요. 대한민국의 최고의 인기를 얻은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과 거의 작업을 다 했거든요. 작곡은 신통치 않아도 그런 가수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조용필 씨 같은 경우는 처음에 곡을 준 것이 <미워 미워 미워>였어요. 당시에 같은 회사에 저는 작곡가로, 조용필 씨는 가수로 소속이 되었는데 조용필 씨가 대마초로 인해서 고전을 할 때였어요. 그때 저한테 와서 가슴을 울리는 곡을 하나 달라고 하더라고요.
<미워 미워 미워>는 오래 전에 작곡해 놓고 숨겨둔 곡인데 피아노 앞에서 연습을 시켜봤더니 조용필 씨가 무릎을 치면서 이걸로 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1981년도에 굉장한 히트를 치면서 100만장이 팔렸어요. 그리고 일본에서 더 히트를 쳐서 트롯 가수 16명이 리바이벌을 했죠.
그 다음에 한 것이 <허공>이에요. 제가 조용필 씨하고 일을 하면서 느낀 건데 어떤 걸 가르친다든지 감정을 이쯤에서는 이 정도만 넣으라고 지시를 하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요. 또 녹음할 때나 공연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 혼신을 다하는 것이 가수로서 히트를 칠 수 있었고 장수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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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랑♡김영미
2008-03-07 22:25:54
허공 노래가사를 다시 되새겨 보게 되네요.^-^
참고로, 정규앨범에서 정풍송님 작곡한 노래로는
3집-미워미워미워, 5집-비 오는 거리
6집- 내 입술에 그대눈물, 8집-허공
이렇게 4곡이 있네요.
그런데요, 정욱과 정풍송님이 같은 분 맞죠?
작사에 정욱 이렇게 이름만 다르게 올렸을 뿐이지
같은 분이라는 거 본 거 같은데...지금 잠시 헷갈려 확신이~
아시는 분 답변주세요.^^
필사랑♡김영미
2008-03-07 22:26:39
필사랑♡김영미
2008-03-07 22:53:32
작사할 때는 「정욱 작사, 정풍송 작곡, 편곡」 이렇게 해요. 처음에 <아마도 빗물이겠지> 이 노래는 「정풍송 작사, 정풍송 작곡, 정풍송 편곡」으로 넣었거든요. 그러데 당시 60년대는 선후배 간에 위계가 강할 때니까 선배들이나 레코드회사 간부들이 혼자 다 해먹으라고 하는 거예요. 이러다가 미움 받겠구나 싶어서 「정욱 작사」로 몰래 냈어요.
당시에 전문 작사가가 없었는데 건방진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사가들이 주는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직접 작사를 했었어요. 나중에 히트가 나오니까 레코드 회사에서 저한테 직접 작사를 해달라는 주문을 하는데 작사자 정욱이라는 이름을 10년 동안 숨겨서 냈어요. 그런데 저작권협회에 정욱과 정풍송이 같은 사람이란 걸 신고해야 돈이 나온다고 해서 정욱이 정풍송이라는 걸 알렸어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테너 임웅균 교수하고 <클래식 가요>라는 음반을 낸 적이 있어요. 제가 작사, 작곡, 편곡, 지휘하고 임웅균 교수가 벨칸토 창법으로 노래를 해서 만든 음반이었어요. 하루는 차를 몰고 가는데 라디오 방송에 모 음악평론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마침 <클래식 가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테너 임웅균 교수가 새로 음반을 냈군요. 작곡가 정풍송 씨와 손을 잡았네요. 정욱 씨와 정풍송 씨는 명콤비죠. 허공을 비롯해서 많은 곡을 만들었어요.”명색이 음악평론가이고 이 계통에서 일을 한다는 사람도 정욱과 정풍송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명콤비라고 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남극노래 만들다 환경지킴이 된 정풍송 작곡가
노컷뉴스에서 일부분 발췌..
우주꿀꿀푸름누리
2008-03-08 01:00:39
송파장원장
2008-03-08 03:0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