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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광화문에서/허엽]조용필과 386

찍사, 2004-12-13 04: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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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학번인 기자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축제에서 조용필이 공연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공연은 열리지 못했다. 운동권 학생들이 “대중가수가 웬 말이냐”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1980년대 중반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조동진이 대학 기숙사 축제에 노래하러 왔다. 그러나 그도 학생들이 운동 가요를 계속 부르는 통에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노래 잘 듣고 간다”며 짐을 쌌다.


‘386’의 문화 코드는 이랬다.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 민중 혁명을 외치던 386의 가슴 속에는 ‘가열찬’ 투쟁만 각인됐던 것이다. 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우리 승리하리라’ ‘타는 목마름으로’ 등으로 저항 의식을 표출했고, 이들에게 대중가요의 통속성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386들은 대중가요의 가사를 바꿔 부르는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담장 밖을 조롱하기도 했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노가바’의 대표적인 대상이었다. ‘하늘엔 최루탄이 터지고, 강물엔 공장 폐수 흐르고….’


이런 정서로 인해 386들은 자기 세대를 대변하는 대중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김민기 양희은 ‘트윈 폴리오’의 포크가 1970년대 청년 문화를, 서태지가 1990년대 신세대 문화를 상징한 데 비해 386에겐 노래패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나 안치환 정도가 있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조용필은 1980년대 스타다.


그는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떠올랐으나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긴 공백을 가졌다. 그가 다시 스타 탄생을 알린 것은 1980년. 그는 그해 초 동아방송(1980년 11월 KBS에 강제 통폐합) 연속극 ‘창밖의 여자’의 주제가로 컴백한 뒤 줄곧 정상에 서 있었다. 당시 가요를 담당했던 한 기자는 “1980년대는 조용필 기사만 쓰면 됐다”고 회고한다.


그럼에도 조용필은 1980년대 대학생들과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80년대 중반 학생 운동이 격화될수록 서로 무신경했다. 조용필은 이에 대해 “당시 대학생들은 공개적으로 내 노래를 부르진 못했어도 내 음반을 사서 혼자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 서클의 MT에서 한 친구가 대중가요를 부르자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을 기자도 겪은 적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요즘, ‘386’과 조용필이 만나는 지점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는 점이다. 조용필이 올해 8월 마련한 대형 콘서트 ‘더 히스토리’에서도, 최근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의 콘서트에서도 40대가 된 ‘386’들이 객석의 30∼40%를 메운다. 386들이 조용필 노래로 ‘전향’한 것일까.


1980년대 운동권 노래는 문화라기보다 이념이자 정치였다. 386들은 운동권 노래를 통해 개인보다 역사와 사회의식을 깨쳤고, 혁명의 이념을 되새겼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이루면서 이들 노래의 가치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386들은 1990년대 중반에 ‘서태지 따라하기’를 하더니, 최근에는 뒤늦게 조용필을 만나러 오고 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중년 문화’라는 이름으로 개인적 자아를 드러내기도 한다.


‘386’의 노래 문화는 변했다. 그런데도 ‘집권 386’ 중에는 1980년대에 노래 시계를 멈춰둔 이들이 보인다. 그게 향수가 아니라면 시대착오이고 뒷걸음질이다.


허 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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