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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40년, 울고 웃던 40년···그는 노래로 '세상 그늘' 지워 나갔다

1970, 80년대 꿈을 안고 상경한 사람들, 환자가 약 먹듯 그의 노래 부르며 견뎌


1.꿈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조용필 노래 베스트 10

·돌아와요 부산항에·창밖의 여자·단발머리·고추잠자리·비련·못찾겠다 꾀꼬리·친구여·킬리만자로의 표범·그 겨울의 찻집·꿈

-베스트 10 선정위원

임진모·송기철·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이영미(『한국대중가요사』 저자), 김종휘(문화평론가), 신승훈·이승철(가수), 주철환(OBS 경인TV 사장), 하성란(소설가), 이재무(시인) 총 10명. 그들 각자에게 조용필 히트곡 15곡 내외를 추천 받아 그 중 10곡을 엄선했다.


‘국민가수’ 조용필(58)이 2008년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단발머리’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중년 여성들은 지금도 ‘오빠’에 열광한다. 우리 시대 많은 아버지들에게 ‘킬리만자로의 표범’ ‘큐’ ‘꿈’은 청춘의 기록 그 자체일 것이다. 조용필의 노래는 지난 40년 한국인의 지치고 아픈 마음을 시적인 가사와 구성진 멜로디로 보듬어줬다. 그리고 큰 나무로 성장해온 우리 사회에 뚜렷한 나이테를 남겼다. 그는 특히 현재진행형이기에 더욱 뜻 깊다. 중앙일보가 음악평론가·가수·소설가·시인·방송인에 의뢰해 ‘조용필 노래 베스트 10’을 선정했다. 각 노래에 담긴 사회적 의미와 음악사적 중요성 등을 연재한다. 첫 회는 ‘꿈’이다.

꿈이란 무엇인가. 마음속의 바람이나 이상이다. 꿈이 있기에 사람은 사람으로서 살 가치가 있다. 그러나 바란다고 해서 꿈을 다 실현할 수는 없다. 더러 뜻밖의 행운으로 유쾌한 웃음을 날릴 수도 있지만 부비트랩처럼 잠복해 있다 불쑥 얼굴을 내밀어 오는 불행 때문에 천붕의 슬픔을 겪기도 한다. 이럴 때 가장 의지가 되는 게 노래다. 즐거워서 부르고 슬퍼서 부르는 노래. 삶이 노래고 노래가 삶이다.

나는 조용필을 좋아한다. 그처럼 닉네임이 많은 가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가수' '살아있는 전설' '가왕(가수의 왕)' '수퍼 카리스마 아티스트' '민족혼을 부르는 가수' 등등.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가요계의 가장 빛나는 큰 별이다.

나는 신화적 존재로서의 조용필보다 인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영원한 현역 조용필을 더 좋아한다. 그의 서늘한 창법도 좋아하지만 애절한 노랫말도 좋아한다. 어떤 노랫말은(예컨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빼어난 서정시를 연상케 한다.

조용필에게는 그늘이 있다. 판소리 창법에서 최고로 치는 소리의 그늘이 있어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절로 가슴이 서늘해진다. 음역 또한 깊고 넓어서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렵다. 그가 부르는 노래의 강물 속으로 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돼 헤엄쳐 들어간다. 음량의 높낮이에 따라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세우고 장단완급의 유영을 즐긴다. 때로 그의 노래는 늪이 되어 나를 한없이 깊이 빨아들인다.

또 그의 노래에는 삶의 진액이 담겨 있다. 징그러울 정도로 끈적끈적한 감정의 덩어리가 묻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의 세례를 흠뻑 받고 나오면 이상하게 탈수기를 빠져 나와 건조된 빨래처럼 마음이 한결 개운해지곤 한다.

조용필은 1970년대 중반 대마초 사건으로 좌절을 겪은 후 명산대천을 반 년 가까이 돌아다니며 피를 토한 끝에 3옥타브 5음계 진성에 탁상을 겸한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 이후 그는 서늘한 그늘의 노래를 통해 세상의 그늘을 지워나갔다.

이것이야말로 가수로서 그가 꾸는 꿈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벌써 그 꿈을 참답게 실현해오고 있는 셈이다.

그는 시대정신을 잃지 않은 가수였다. 80년대에는 서양음악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으려 했고 그 결과 기성세대에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90년대 그는 다시 젊음의 대변자가 되기를 원했다. 노래 '꿈'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암울했던 청년기 나는 그를 들으며 생의 활력과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그를 따라 부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다지기도 하였다. 소녀는 아니었으나 오빠처럼 따르고 좋아했다. 노랫말을 적고 외우고 창법을 모방했던 나의 10대와 20대는 충분히 행복했다.

더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조용필을 떠나지 못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온 서울은 내게 "춥고도 험한 곳"이었다. "여기저기"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맺는"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내 삶의 유일한 위안이자 힘이었던 그녀가 떠난 날 혼자 외진 골목의 지하노래방으로 들어가 조용필 노래를 부르며 어미의 치마말기를 놓친 아이처럼 엉엉 울었던 그 해 겨울을 난 영원히 잊을 수 없다.

70년대와 80년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올라와 꼬리가 긴 주소를 지니고 살아가던 상경파들은 환자가 약을 복용하듯 그의 노래를 복용하며 불우를 견디고 이겨내었다. "머나먼 길을 찾아" "꿈을 찾아" 대처로 올라와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아무도 말을 않는" 사고무친의 허허벌판 같은 세상에 넝마와 같은 살림을 부려 놓고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불렀던 나날들. 집밖의 싸움에서 지고 돌아와 까닭 없이 서럽고 우울한 날 유유상종끼리 어울려 합창을 하기도 하고 "홀로 눈을 감고" 흐느껴 울며 목청껏 불러 제켰던 그의 노래들은 생의 안쪽에 아프고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다.

불우하고 불우한 우리 상경파들은 그의 노래가 있어 춥고 외로운 시대를 그런대로 꿈을 놓치지 않고 가까스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래에도 유전인자가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계열의 근친일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비록 노래를 통해서이지만 그토록 밀도 높은 관계로 밀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정서적 차원에서 한 가족이었던 셈이다.

요철과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의 삶을 경험하지 않은 자는 결코 조용필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그의 노래는 삶의 저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것이기에 내 몸속 숨어있는 현을 예민하게 건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자전적 생애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노래를 통해 그가 녹록하지 않은 여러 겹의 생을 살아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의 노래는 우리네 사연 많은 삶을 겯고틀면서 힘과 위로를 준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높은 이상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말라고 충동하기도 한다.

무자년이 밝았다. 꿈을 지닌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거리와 골목이 붐빌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늘 그렇듯 처음 품었던 각오의 빛이 바래고 여기저기 "괴롭고도 험한" 길을 헤매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삶의 진창을 구르더라도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꿈을 저버린 삶은 죽은 삶이기 때문이다. "저기 저 별" "나의 마음" "나의 꿈을 알" 때까지 힘차게 걸어가자. 힘들 땐 노래를 부르면서….

이재무(시인)

조용필, 그때 내 마음은…

1980년대 중·후반, 수많은 지방 청년들이 직업을 찾아 무작정 상경한다는 신문 기사를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88올림픽 전후 서울에 대한 갈망이 증가하던 때였다. 그런 사회적 현상과 지방 청춘들의 꿈에 대해 노래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꿈을 주제로 한 신곡을 구상하던 때였다.

그때 신문은 지적했다. 상경한 그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농촌의 공동화도 심각한 문제라고…. 기사처럼 무모한 꿈은 절대 좋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평생 꿈을 꾸며 살아가는 존재다. 꿈이 없으면 살아가는 의미도 없다. 누구나 죽을 때까지 꿈은 갖고 산다.

노래를 통해 도시 생활에서 상처입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꿈을 계속 꾸라고 독려해주고 싶었다. 새해가 왔다.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꿀 것이다. 나의 올해 꿈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콘서트로 공연문화를 살리는 것이다. 새 앨범도 곧 나온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가수 조용필의 꿈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출처:http://koreadaily.com/asp/article.asp?sv=la&src=metr&cont=metr&typ=1&aid=200801081721062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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