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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기도하는 … 꺅 ! ” 오빠 마법에 홀리다

[신년특집] 조용필40년 울고 웃던40년 7. 비련

노랫말 속에 사랑과 이별, 눈물이 그토록 많은 건 사랑을 감기쯤으로 여기는 경솔한 연애관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함께 사느냐가 아니라 함께 죽을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죽을 수 없다면 사랑은 오늘도 미완성이다. 길 위에서 오고 가는 건 사랑이 아니고 사랑의 유사감정에 불과하다.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들은 새로운 병균에 감염되고 한동안 앓다가 마스크를 벗는다.


‘비련’은 비장한 사랑 노래다. 가수는 통속의 노랫말을 극도의 절제로 경건하게 추스른다. 슬픔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설을 단 몇 분 안에 증거물로 제시한다. 하기야 시인이 글을 쓰는 건 인생이 쓰기(bitter) 때문이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건 그리운(miss) 대상이 있는 까닭이다. 가수는 왜 노래를 부른다고(call) 할까. 간절히 부르면 떠나간 것이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예감 때문 아닐까.

‘비련’은 가객과 관객이 함께 ‘부르는’ 노래다. “기도하는”으로 주문을 걸면 최면에 걸린 관객들은 “꺅” 하고 비명으로 화답한다. 그리고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에 빠져든다. 잃어버린 것들에게, 그들을 데려간 미운 세월을 향해 부르짖는 초혼제의 제사장, 그가 조용필이다. 1970년대 중반 대학가 주변의 술집에선 난데없이 항구의 비린내가 진동했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그리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막걸리 주전자는 두 노래의 젓가락 리듬으로 구겨졌고 유신의 청춘은 형광등 불빛 아래 휘청거렸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은 와도 형제 떠난 항구는 갈매기 울음소리로 불안했던 시절이었다. 제대하고 방송사(MBC)에 들어와 처음 배치된 곳이 제작3부였다. 드라마가 1부, 쇼 오락이 2부, 그리고 나머지 교양·어린이·청소년 프로가 3부 차지였다. 몸은 비록 3부였지만 마음은 2부에 슬쩍 걸쳐두고 있었다. ‘모여라 꿈동산’ 소품을 신청하러 가면서, ‘장학퀴즈’ 문제를 추리면서 입으론 연방 노래를 흥얼거렸다.

공개홀에서 밴드소리가 나면 한걸음에 달려가곤 했다. 객석 맨 끝자리에 앉아 언젠가는 호형호제를 해야지 다짐했고 드디어 어느 날 기회를 잡았다. 녹화를 마치고 포장마차에서 2부 선배들과 술 마시는 그를 발견하고 슬며시 다가가 용감하게 인사했다.

“형님 사랑합니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취중 세미나(조용필이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관한 보고서)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기분 좋게 들으며 마셨고 나는 급기야 목표를 달성했다. 1주일 후 방송사 복도에서 그가 먼저 내 이름을 불러준 것이다.

내가 2부에 입성해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연출할 때 그는 이미 TV를 떠나 있었다. 그가 머물렀던 자리는 서태지와 아이들·김건모·신승훈 등으로 채워졌다. 한마디로 우리의 만남은 엇갈렸다. 그가 정상에서 고함지를 때 나는 산기슭을 헤매고 다녔고, 내가 산 위로 올라갔을 때 그는 이미 하산해 바다(무대)로 가버린 것이다.

데뷔 35주년 공연에 공동연출로 참여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한동안 가슴이 얼얼했다. 그의 ‘신도들’이 모이는 자리에 ‘사도’의 신분으로 함께한다는 게 꿈처럼 솔깃했다. 스튜디오에 나를 부르더니 신곡을 들려주었다. 가사가 없는 절대음악이었다. 어떤 느낌이냐고 묻더니 내게 가사를 입히라는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를 외로운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그림이 떠올랐다. 제목을 ‘청춘의 사막’이라고 붙였더니 한참 후에 다소 엉뚱한 제목을 제안했다. 35주년 기념음반에 실린 ‘도시의 오페라’ 탄생 비화다. 천하의 조용필이 연습에 또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세상에 거저먹는 건 없구나 하는 깨달음을 부록으로 얻었다. 그는 무대 위의 왕이다. 호령하지 않고 호통치지 않는 왕. 그는 단지 호흡할 뿐이다. 그에게 노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주철환(OBS 경인TV 사장)

조용필 인기곡 베스트10
노래방서 하루 평균 18만1000번 불려

  
일반인이 가장 좋아하는 조용필의 노래는 뭘까. 흥겨운 리듬의 ‘여행을 떠나요’가 1위에 올랐다. 노래반주기 업체인 금영과 티제이 미디어가 조사한 결과다.

또 조용필의 노래 하루 평균 선곡 횟수는 18만1000번인 것으로 집계됐다. 인터넷 반주기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전체 반주기 대수와 비교해 추산한 수치다. 현재 전국 노래방 반주기 가운데 인터넷 반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다. 인터넷 반주기는 2004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요’ 다음으로 많이 불린 노래는 ‘그 겨울의 찻집’이다. 티제이 미디어가 지난해 12월 한 달간 집계한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일부 곡의 순위가 조금 다를 뿐, 1~3위에 오른 노래는 동일했다. 톱 10에 오른 노래 목록도 같았다. ‘조용필 디스코 메들리’가 10위권 안에 든 게 흥미롭다.  


정현목 기자

조용필, 그때 내 마음은 …


‘비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객석의 “꺅” 하는 비명소리다. 나 조용필을 ‘영원한 오빠’로 만들어 준 히트곡 중 하나다. 무대에 올라 “기도하는”만 살짝 불러도 객석에선 조건반사처럼 “꺅”이 터져나왔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수많은 관객이 단체로 “꺅”을 외쳐대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비명이 안 나오면 이상하게 느껴지리만큼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비명이 안 나온 적도 없었다. “꺅” 하는 비명은 요즘 콘서트에서도 나온다. 달라진 것은 나이 든 관객들이 함께 외쳐 놓고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는다는 것이다. 그때를 추억하는 것이다.

사실 그때는 무슨 노래를 하든 히트하던 때여서 조용필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노래 중간에 함성이 쏟아지는 노래는 ‘비련’과 ‘여행을 떠나요’ 두 곡뿐이다. “기도하는”과 “푸른 언덕에”라는 도입부 다음에 공백이 있기 때문이다. 쇼킹한 것을 보여주려고 그런 장치를 한 것이다. 가사도 그랬다. 사랑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충격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기도하는’이란 노랫말을 직접 썼다.

출처:http://news.joins.com/article/3037550.html?ct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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