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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톱스타 조용필의 화려한 고독



힘들고 외로울 때는 스포츠 카 몰고 부모님·부인 산소로 달려가

●공연 앞두고 주 2~3회씩 새벽 등산… 주말엔 가끔씩 골프 나가
●술 좋아해 친구들과 새벽까지 가기도… 기분 좋으면 노래방 가서 자기 노래도 불러

『남들이 보기에 혼자 살고, 나이도 먹어가니까 그렇게(외롭게) 보일지 모르지만 별로 그렇지 않아.

언제나 내 일이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런 걸 티내는 성격도 아니라서.

난 私的(사적)인 일은 혼자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라구』


최승현 조선일보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vaidale@chosun.com)



생활의 중심은 노래와 공연

『날씨가 엄청 좋았어, 아주 행운인 것 같아』

지난 5월11일 오후,

「歌王(가왕)」 趙容弼(조용필·55)의 서울 서초동 집을 찾았을 때,

그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4월 말 「필 앤 피스 월드컵 스타디움 순회공연」의 출발선에 서 있던 시기에 비해서.

첫 번째 제주 공연의 성공 때문이다. 이 공연에는 2만여 명 이상의 관객이 몰렸다.

조용필은 『목, 금요일에는 비가 엄청 와서 걱정했는데 결과가 좋았다』며

『제주도에 인구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숱한 사람들이 찾아와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조용필씨의 평소 생활은 특별한 게 없다.

항상 공연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공연을 앞두고는 일주일에 2~3회씩 동네 인근 산으로 등산을 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금세 알아보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까봐 새벽 5~6시에 일찌감치 등산을 한다.

그리고 공연을 두세 달 앞두고는 개인 트레이너를 불러 일주일에 2~3회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강하게 한다.

그의 서초동 빌라에는,

평소에는 그와 식사를 준비하는 아주머니밖에 없다.

가끔 그의 매니저라고 할 수 있는 조재성 실장이 같이 있기도 하다.

주말에 아는 유명인사들과 가끔 골프를 치는 것 외에는 특별히 따로 만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그의 생활의 중심은 온통 노래와 공연에 맞춰져 있다.

서초동 그의 빌라는 무척 넓다.

마루에는 와이드 tv가 있다.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여러 차례 봤다.

음악은 항상 afkn을 듣는다.

그는 『새로운 종류의 음악을 먼저 접하기 위해서는 afkn을 듣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항상 마루에 앉아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테이블 위에는 간혹 최신 헤비메탈, 록밴드들의 음반이 놓여 있어 보는 이를 놀라게도 한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록에 본령을 두고 있는 음악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조용필은 본인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지금 인생의 「마지막 도전」에 임하고 있다.

외국의 엄청난 팝스타들도 거대한 스타디움 공연에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는 이유는,

거대한 객석 수에 대한 부담감이 첫 번째.

드넓은 공간에 자리잡은 관객들을 압도하는 무대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내공연에 비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조용필은 지금 그런 스타디움 공연을 전국의 모든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에서만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이 이뤄진다.

그와 30여 분쯤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답답하다』며 갑자기 일어섰다.

그는 5월8일 제주공연을 마친 뒤, 10일 서울로 올라와 피곤한 몸을 휴식으로 달래고 있었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술이나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인근 일식집으로 향했다.

조용필은 술을 좋아한다.

평소에는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가끔 知人(지인)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술 마시고 기분이 좋을 때는 노래방에서 가끔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부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냥 앞으로 고꾸라졌다



맥주를 한 잔 마신 뒤 그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도대체 내년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호방하게 웃었다.

그는 1999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 처음 선 뒤,

수많은 관객을 불러모으며 공연 횟수를 끊임없이 늘려갔다.

2003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35주년 기념 콘서트는 세찬 빗줄기 속에도 4만7000여 명의 유료관객을 불러모았다.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이번 「월드컵 스타디움 순회공연」은 가수 조용필의 거침없는 도전의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남이 어떻게 보든, 나는 그간 항상 내 일에 최선을 다해왔어. 올해 이런 일을 했으면,

내년에는 어떤 일을 해야지 하는 계획을 언제나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지.

목표를 잃어버리면 안 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해야 될 일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일들이 있을 거야.

그것들을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게 변함없는 내 인생의 길이지』

그가 지금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뮤지컬이다.

그는 이미 무대와 뮤지컬 등에 대해 전문가를 능가하는 지식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자신의 공연 스태프들을 이끌고 1년에 1~2회씩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

한 달 또는 두 달 동안 미국의 작은 호텔에 터를 잡고 끊임없이 공연을 보고, 분석했다.

그래서 그의 무대는 국내 어떤 가수의 무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새로운 개념으로 가득차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부인을 갑자기 잃은 뒤, 그의 일상은 어떨까?

『외롭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그는 허허 웃었다.

『남들이 보기에 혼자 살고, 나이도 먹어가니까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별로 그렇지 않아. 언제나 내 일이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런 걸 티내는 성격도 아니라서.

난 私的(사적)인 일은 혼자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라구』

그는 힘들고 외로울 때,

돌아가신 부모님과 부인이 함께 잠들어 있는 경기도 화성의 선산을 향해 자신의 벤츠 스포츠카를 몰고 달려간다.

무서운 속도로 새벽에 달려간다.

그의 차에 타본 사람은 안다.

조용필씨가 차를 얼마나 터프하게 모는지.

운전은 진짜 잘한다.

아마 경부고속도로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릴 것이다.

이날도 그는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얘기가 나오자,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냥 앞으로 고꾸라졌다』고 하면서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노래와 음악에는 1, 2등이 없다』



조용필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최고 가수이자 음악인이다.

「絶唱(절창)」으로 이름난 그이지만, 음악 인생은 뜻밖에 기타와 함께 시작됐다.

『원래 가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

난 처음에 밴드에서 리드기타를 쳤거든. 보컬리스트도 따로 있었지.

그때는 내가 가수로 이런 위치에 오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기타는 당시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 것까지 미리 짐작하고 있다면 내가 천재게? 난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

조용필은 중학교 때 서울 동대문 스케이트장에서 비틀즈와 벤처스의 음악을 듣고 자연스럽게 기타를 잡았다.

그러나 집안,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워낙 심해 1968년 가출까지 하게 된다.

이후 미8군에서 주로 활동하며 숱한 외국음악을 듣고 연습에 매진했다.

『최고의 가수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노래라는 게 최고가 없어. 사람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다 다르듯이 모두 개성, 스타일이 있는 거잖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 차이가 있고.

그런데 「노래를 잘한다, 못한다」라고 단정적으로 어떻게 말하겠어. 노래와 음악에는 1, 2등이 없어.

그저 대중의 문화적 선택이 있을 뿐이지』

그러나 그는 『노래가 히트하는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된다』며

『곡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운이 따라야 하고, 시기도 잘 타야 한다』고 했다.

질문을 바꿔봤다.

『그럼 가수 조용필이 최고가 된 이유는 뭘까요?』

『글쎄 내가 최고인가?

난 나에 대해 항상 긍정적이지 못해.

언제나 불만이 가득하지.

요즘 나의 기준은 세계적인 작품들이야.

나라는 사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꾸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나를 단련시키고 있는 것 같아』

조용필은 요즘 대중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주춤한 것 같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단순히 인터넷의 영향으로 음반이 적게 팔리거나 하는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요즘 대중음악 쪽에 거대한 스타가 없어.

나는 이미 공연을 통해 대중을 직접 만나고 있지만,

젊은 가수들 중에 스타가 좀 나와야 된다고.

문화,

그중에서도 대중음악은 분야 전체를 이끌어가는 뛰어난 선두주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롱런할 수 있는 인기가수가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어』


조용필은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음악은 항상 있었지만, 대중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지금도 내가 집에서 듣는 음악은 부르는 음악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했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에 온몸을 던지다



혹시 아쉬움은 없나요?』라고 물었다.

『왜 없겠어?

하지만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니까 이 나이에 이런 스타디움 순회공연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내가 그 동안 참느라고 못 했던 음악은 이제 마음껏 할 수 있지.

이제는 히트에 연연하지 않아.

무대인으로 자리가 잡혔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까?』

조용필은 1987년 연말 가요대상 출연을 거절한 뒤부터 TV 출연을 자제했다.

특히 199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거미여인의 키스」를 보고 난 뒤에는 노래만큼 무대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특히 1992년 「꿈」 이후 그를 TV에서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공연을 천착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

1993년부터 전국 투어를 시작했는데,

TV에 안 나가고 지방에서 공연을 하니까 객석이 다 차지 않더라구.

음반 판매량도 좀 떨어지고.

그래도 나는 콘서트만이 내가 갈 길이라고 생각했어.

1997년에 완전히 방송출연을 중단한 뒤에는 정말 무대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지』

조용필은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고의 가수로 그 자리를 탄탄하게 지키고 있다.

이는 자신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에 온몸을 던지는 그의 적극적인 자세에 기인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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