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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歌王, 한 오백년 부를수 있다면…


조용필 내달 24일 데뷔 40주년 콘서트

“인기란 바람같은 것…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다 죽는 상상만 해도 행복”

《어김없었다. 데뷔 40주년 기념 콘서트 제작발표회가 끝난 16일 오후 8시. 방송사와 잇단 인터뷰를 치른 조용필(58)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식당, 이어지는 노래방 뒤풀이는 변함없는 ‘조용필 코스’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마음먹은 듯 많은 이야기를 해 나갔다. 가볍게 한잔하려던 기자는 처음 들어보는 그의 얘기에 다급해졌다. 그는 “자서전을 위해 아껴뒀던 이야기”라고 말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있나요.

“사람들은 그 노래가 부산에서 ‘떠서’ 올라왔다고 알지만 그 반대입니다. 말하자면 토네이도 킴 같은 서울 지역 다방 DJ들의 힘으로 남쪽으로 내려간 거죠.(웃음) 1970년대 중반 미8군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한동안 방황했어요. 그러다 선배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곡을 줬는데 ‘아, 이게 내 노래구나’ 했습니다. 타이틀곡도 아니었는데 그게 히트곡이 될 줄 몰랐죠.”

―‘한오백년’은 어떻게 부르게 됐나요.

“1970년대 후반 대마초 파동을 겪고 우연히 TV를 봤어요. 강가에 돛단배를 타고 소복을 입은 사람이 ‘한 많은∼’을 부르니 소름이 쫙…. 그 후 ‘한오백년’을 부른 판을 죄다 사들였어요. 음계 하나하나 건반에서 찾아 녹음도 안 한 채, 그 곡을 1979년 대한극장 리사이틀에서 불러버린 거죠. 그런데 반응이 장난이 아닌 거예요. 결국 ‘창밖의 여자’와 함께 앨범에 수록했고 (앨범이 나온) 그해 1980년 제1회 세계 음악제에서 두 곡을 불렀습니다. 원래 대상이 나였다는데 한국 주최라서 금상 인기상 작곡상을 받은 거죠.”

―1980년 군사 정권에서 빛을 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흑백TV에서 컬러TV로 시대는 모든 것이 바뀌고 있었어요. 그랬으니 ‘단발머리’나 ‘창밖의 여자’가 됐지. 박정희 정권 때 불렀으면 끌려갔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시대가 시대인지라 정권의 간섭에서 벗어나진 못했을 텐데요.

“김지하 씨가 어느 날 연락을 했어요. 옥중에서 철창 사이로 흘러나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합디다. 이후 김 씨가 살던 원주를 자주 오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검문에 걸려 차 내부를 분해당한 적 있습니다. 혹시 불온문서라도 들어 있나 했던 거죠. 김 씨의 영향 때문인지, ‘생명’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애 울음소리와 파도 소리를 넣었는데 가사가 방송사 심의에 걸려 이것저것 빼다 보니 동요가 돼 버렸어요.(웃음) 그 가사 살벌했는데 지금 원본을 찾을 수 없어…. 하긴 김 씨로 인해 국가안전기획부에 간 적도 있어요.”

―TV 출연을 중단하고 공연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입니까.

“1992년쯤이었어요. 서태지 신승훈 이승철 등이 물밀듯 밀려오던 때였죠. 당시 일본에서 신칸센을 탔는데 어느 역에서 카메라 기자들이 들이닥치는 거예요. 나한테 오나 싶었는데, NHK 홍백전도 여러 차례 출연했던 나한테는 아무도 안 오고 그 옆의 가수들한테 가더라고. 안내하는 이한테 물었더니 TV 출연은 거의 하지 않는데도 엄청 유명한 가수라더군요. 나중에 역에서 내리는데 무지하게 창피했어요. 그들의 팬이 엄청 많았거든. 나는 한 사람도 몰라보고. TV에도 안 나오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 오면서 계산을 해봤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후배들은 더 많이 나오잖아요. 그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가서 웃겨야 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슬퍼지는 거야. 자살 충동까지 느꼈으니까요. 그때 ‘좋다, TV엔 나가지 말자’ 결정한 거죠.”

―슬럼프가 있었을 텐데요.

“3년 정도 지나니 지방 객석은 절반도 안 차는 거예요. 히트곡이 이렇게 많은 조용필도 TV에 안 나오니 한물갔다는 거죠. 이때부터 시련이었어요. 조용필 다 끝났다 했을 때 무대를 만드는 데 ‘목숨’ 걸었죠. 한 3년 반 정도? 죽고 싶은 시간이었어요. 그때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이 히트곡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은 공연문화의 차이일 것이다’라고. 그렇게 다독여줬죠.”

―한 번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앨범을 내면 무조건(히트)이었어요. 가수들이 내가 녹음한다고 그러면 녹음을 안 했으니까요. 지금도 공연을 하면 강남 술집과 주변 음식점들이 예약을 안 받아요. 그날 저녁은 공치니까. 재미있는 건 이제껏 85%가 여자 팬이었는데 ‘저 자식 좀 안 나왔으면 했던’ 남자들이 절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웃음) 장담건대 몇 년 있으면 남자가 더 많을 거예요. 인기라는 것은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돈은 은행에 넣어 두면 이자라도 붙지만 인기는 어디 그런가요. 결국 인기는 바람이자 파도라고 생각해요. 노래라는 것은 부르는 대로 흐를 뿐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바람처럼 왔다 가는 거고요. 그렇지만 나는 정지하고 싶은 거죠. 붙잡고 싶은 거예요. 40년 동안 머무는 바람이라고요? 하하.”

―항상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고 말해 왔습니다.

“패티김 씨 존경합니다. 50년을 어떻게 해요. 무대에서 죽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행복할 뿐이죠. 그렇게 안 될 걸 알고 꿈에 불과한 것도 알죠. 사람이라는 건 힘의 한계가 있는데….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패티김 씨처럼은 장담 못 해요. 솔직히.”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스태프 5200명… 40m 초대형 영상타워… 콘서트 규모에 압도▼

연말까지 국내외 21개 도시서 공연

5200여 명의 스태프, 40m 높이의 거대한 영상타워, 80m 무대 너비, 순식간에 무대 뒤로 설산(雪山)을 쌓는 듯한 첨단 기술….

16일 제작 발표회를 통해 드러난 조용필 콘서트는 수치만으로 압도당한다. 레퍼토리도 ‘그리운 날들’ ‘추억의 날들’ ‘도전의 날들’ ‘나눔의 날들’ ‘나의 날들’ ‘동행’ 등 40년 세월을 함축하는 6개 주제로 압축했다. 40주년이라는 의미에 맞게 ‘꿈’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40곡을 부를 예정.

이번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곡은 1985년 발표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35주년 기념 콘서트에 이어 이번 무대의 연출을 맡은 이종일 감독은 “이 곡은 조용필의 수많은 노래 가운데서 삶과 철학을 대변한다”며 “‘킬리만자로 표범’을 형상화한 3차원(3D)애니메이션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오프닝에 대해 조용필은 “영상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깜짝 오프닝, 기가 막힌 오프닝 등 3개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조용필 40주년 기념 콘서트 ‘더 히스토리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5월 24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시작으로 대전 대구 창원 울산 여수 광주 등 국내 19개 도시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노키아센터, 뉴욕 라디오시티홀 등에서 12월 13일까지 이어진다. 02-541-7110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출처: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422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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