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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2008-04-25] [신문로]조용필과 김지하의 만남
2008.04.2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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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조용필과 김지하의 만남
가수 조용필씨와 김지하 시인이 처음 만난 건 1981년 초 어느날이었다. 여의도의 한 맥주집에서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5년 9개월의 옥살이를 한 김 시인이 출옥한 직후였다.
당시 조씨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잇단 히트곡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었고 김 시인 역시 ‘오적’과 ‘비어’ 등 날카로운 풍자시와 대담한 반정부투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감옥에서 철창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지겹도록 들은 끝에 큰 감명을 받은 김 시인이 한 방송사 간부의 소개로 조씨를 만난 것이다.
조씨는 처음 만난 김 시인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는 대중가수입니다.”
재치와 기지로 무장한 김 시인이 즉각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대중시인일세.”
올해로 가수 데뷔 40년을 맞는 조용필씨와 내년에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김지하 시인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노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조씨는 경동고 3학년 때 비틀즈와 벤처스에 빠져 살다 가출한 뒤 1968년 미군 클럽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노래광’으로서 김 시인의 편력은 이채롭기 그지없다. 오죽했으면 백기완 선생이 어느 자리에서 김 시인을 두고 “한자리에서 수백곡의 가요를 불러제치는 노래 노동자”라고 했겠는가.
시인이 승리한 철야 노래대결
첫 인연을 맺은 뒤 어느날 조씨가 김 시인을 만나러 당시 그가 살던 원주로 내려갔다. 조씨가 김 시인에게 노래시합을 하자며 도전장을 낸 것이다. 두 사람은 원주의 한 술집에서 주로 조씨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합을 이어갔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무리된 이 시합에서 끝내 항복을 선언한 사람은 다름아닌 도전자 조씨였다. 김 시인이 막판에 조씨의 히트곡인 ‘촛불’을 불렀는데, 이게 승패를 가른 것이다. 김 시인은 원주 토박이 언청이 소리로 이 노래를 패러디해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흐대는 훼 홋불을 히셨나요/흐대는 훼 홋불을 히셨나요/연약한 이 마음을 후가후가 히히려나~”
조씨가 ‘촛불’을 부를 때 첫 소절에 집어넣는 다소 과격한 액센트를 절묘하게 잡아내 언청이 소리로 패러디한 것인데, 김 시인의 노래를 듣던 조씨는 그 자리에서 배꼽을 잡고 자지러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홋불’보다 더 웃기는 일이 곧바로 벌어졌다. 그 이튿날 새벽 노래시합에서 패한 조씨가 자신의 승용차로 원주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다 당국에 연행돼 공갈협박을 당한 것이다. 공갈협박의 내용인 즉슨 “김지하와 놀지 말 것! 계속 놀면 무대에 못 선다는 것!” 연예인의 생명선을 끊겠다는 으스스한 공갈협박을 당한 셈인데, 조씨의 이후 태도가 김 시인을 감동하게 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서울에 도착한 조씨가 김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낱낱이 고해바친 것이다. 이럴 만큼 조씨는 연예인으로서 드문 심지의 소유자다.
노래든 시든 한 분야에서 40년 동안 정상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심지가 있었던 까닭에 오랫 동안 정상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조씨의 이런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경험에 비춰볼 때 노래를 잘 하려면 일단 많이 불러야 한다. 내가 라이브 컨서트를 하는 후배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 역시 연습을 무지하게 해야 제 소리가 나는 편이어서 타고난 목소리의 소유자는 아니다.” 엄청난 훈련과 가혹한 자리관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엄청난 훈련과 가혹한 자기관리
조씨는 지난 2003년 데뷔 35년을 맞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기념공연을 했다. 당시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그의 팬들은 온몸이 흠뻑 젖어내린 것도 잊고 자리를 지키며 갈채를 보냈다.
김지하 시인은 자신의 회고록 말미에 조씨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에 와달라고 전화했을 때 바빠서였지만 냉정하게 거절한 일이 있는데 그 뒤로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5월 24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주제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40주년 기념콘서트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대중 예술인’이 다시 만나는 것을 보고 싶다.
김영철 (시민방송 RTV 상임부이사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출처: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sid=E&tid=8&nnum=398647
가수 조용필씨와 김지하 시인이 처음 만난 건 1981년 초 어느날이었다. 여의도의 한 맥주집에서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5년 9개월의 옥살이를 한 김 시인이 출옥한 직후였다.
당시 조씨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잇단 히트곡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었고 김 시인 역시 ‘오적’과 ‘비어’ 등 날카로운 풍자시와 대담한 반정부투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감옥에서 철창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지겹도록 들은 끝에 큰 감명을 받은 김 시인이 한 방송사 간부의 소개로 조씨를 만난 것이다.
조씨는 처음 만난 김 시인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는 대중가수입니다.”
재치와 기지로 무장한 김 시인이 즉각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대중시인일세.”
올해로 가수 데뷔 40년을 맞는 조용필씨와 내년에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김지하 시인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노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조씨는 경동고 3학년 때 비틀즈와 벤처스에 빠져 살다 가출한 뒤 1968년 미군 클럽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노래광’으로서 김 시인의 편력은 이채롭기 그지없다. 오죽했으면 백기완 선생이 어느 자리에서 김 시인을 두고 “한자리에서 수백곡의 가요를 불러제치는 노래 노동자”라고 했겠는가.
시인이 승리한 철야 노래대결
첫 인연을 맺은 뒤 어느날 조씨가 김 시인을 만나러 당시 그가 살던 원주로 내려갔다. 조씨가 김 시인에게 노래시합을 하자며 도전장을 낸 것이다. 두 사람은 원주의 한 술집에서 주로 조씨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합을 이어갔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무리된 이 시합에서 끝내 항복을 선언한 사람은 다름아닌 도전자 조씨였다. 김 시인이 막판에 조씨의 히트곡인 ‘촛불’을 불렀는데, 이게 승패를 가른 것이다. 김 시인은 원주 토박이 언청이 소리로 이 노래를 패러디해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흐대는 훼 홋불을 히셨나요/흐대는 훼 홋불을 히셨나요/연약한 이 마음을 후가후가 히히려나~”
조씨가 ‘촛불’을 부를 때 첫 소절에 집어넣는 다소 과격한 액센트를 절묘하게 잡아내 언청이 소리로 패러디한 것인데, 김 시인의 노래를 듣던 조씨는 그 자리에서 배꼽을 잡고 자지러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홋불’보다 더 웃기는 일이 곧바로 벌어졌다. 그 이튿날 새벽 노래시합에서 패한 조씨가 자신의 승용차로 원주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다 당국에 연행돼 공갈협박을 당한 것이다. 공갈협박의 내용인 즉슨 “김지하와 놀지 말 것! 계속 놀면 무대에 못 선다는 것!” 연예인의 생명선을 끊겠다는 으스스한 공갈협박을 당한 셈인데, 조씨의 이후 태도가 김 시인을 감동하게 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서울에 도착한 조씨가 김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낱낱이 고해바친 것이다. 이럴 만큼 조씨는 연예인으로서 드문 심지의 소유자다.
노래든 시든 한 분야에서 40년 동안 정상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심지가 있었던 까닭에 오랫 동안 정상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조씨의 이런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경험에 비춰볼 때 노래를 잘 하려면 일단 많이 불러야 한다. 내가 라이브 컨서트를 하는 후배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 역시 연습을 무지하게 해야 제 소리가 나는 편이어서 타고난 목소리의 소유자는 아니다.” 엄청난 훈련과 가혹한 자리관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엄청난 훈련과 가혹한 자기관리
조씨는 지난 2003년 데뷔 35년을 맞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기념공연을 했다. 당시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그의 팬들은 온몸이 흠뻑 젖어내린 것도 잊고 자리를 지키며 갈채를 보냈다.
김지하 시인은 자신의 회고록 말미에 조씨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에 와달라고 전화했을 때 바빠서였지만 냉정하게 거절한 일이 있는데 그 뒤로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5월 24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주제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40주년 기념콘서트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대중 예술인’이 다시 만나는 것을 보고 싶다.
김영철 (시민방송 RTV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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