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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운 2008-06-20] 그대는 왜 촛불을 드셨나요?
2008.06.21 18:47
신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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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왜 촛불을 드셨나요?
불을 억지로 끄려고 하면 장작불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아야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80년대를 풍미했던 조용필의 노래 ‘촛불’은 ‘왜’ 촛불을 켰는지에 대해서 연달아 묻고 있어, 지금의 시국에 대한 예지가요만 같다.
우리 역사 사상 시위에 초·중생이 가담한 적도 있었던가?
남녀노소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이유는 분명 미친 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도 국민을 잘 살게 해 주겠노라 던 대통령의 백일잔치는 촛불잔치가 되었는가.
촛불을 밝히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같다. 우리 민족에게 촛불은 차세대의 미래를 위해서 캄캄한 밤을 밝히는 절망 속의 빛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가장 연장자가 대표로 후미진 곳마다 불을 밝히고 액운은 물리게 하고, 행운을 불러들이는 매개체로 삼아왔다.
그런데 그 영혼을 밝히는 심지였던 촛불을 차세대들까지 합류하여 거리에 나왔다. 이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참여로 매우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건 민중의 울부짖음이고, 분노의 표출이다. 그 촛불을 든 가슴마다 이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묵묵히 견뎌내기에 감당하기 몹시 뜨거운 불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들 나름대로…….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인수하는 기간부터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일정 부분의 물가에 대해선 세계 유가 폭등으로 나라님도 어쩔 수 없겠지만 기성세대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어졌고,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의 사정도 매우 절박해 졌다.
또 모든 교육의 교육비는 대들보가 흔들릴 지경인데, ‘영어몰입’이니, ‘초등학교부터 상대평가’니 하는 나라의 대표가 한 마디씩 던지는 교육정책은 부모와 어린이, 청소년들의 어려움을 더욱 부채질 했다. 그래서 초등학생들까지 ‘대통령’이라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풍토가 되고 말았다.
예로부터 민중은 메이저리그 층이 아니고, 마이너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들은 대부분 천대받고, 멸시받았다. 그들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있으면서도 비주류로 존재했다.
민중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요구한다. 이것마저도 결여될 때, 그들은 횃불을 들었고, 깃발을 흔들었다.
어떤 영화에서 소시민들 괴롭히는 범죄자를 ‘공공의 적’이라하며, 전개해 나간다. 그 영화에서는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못 가진 자에게 큰 소리 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많이 가진 것이 죄가 아니듯, 가지지 못한 것도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8년 대한민국에 가진 자 보다는 못 가진 자가 훨씬 많다. 가진 것을 자랑삼아 큰 소리 치며 내각을 구성할 분위기는 아직 아니다.
광우병 소고기가 수입되는 것이 촛불시위의 전적인 원인이 아니다. 이런 민심도 읽지 못하는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잘 살게 해 주겠다고 해 놓고, 누구나가 손쉽게 먹을 수 있었던 김밥 값 마저 50%정도 인상되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잘 살기는 커녕 배고파 죽겠다. 온 거리가 붉은 조끼 입은 사람들도 가득하다. 밤이면 촛불을 밝힌다.
그래도 남색과 쪽빛이 하나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성질이듯 우리는 하나다. 이제 촛불을 든 사람도,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이씨도, 권씨도, 정부도 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다.
조용필의 ‘촛불’은 연약한 마음을 말 할 곳이 없어서 촛불을 켰다고 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밤거리의 촛불도 연약한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연약한 마음은 표현됨으로 강해질 수 있다.
촛불을 든 사람도, 이 불빛을 멀리서 가까이서 바라보는 사람도, 집단의 힘으로 억지로 바꾸려 하면 더욱 위태로워짐을 알아야 하고, 필력이 있거나 인기가 있다고 하여 불을 억지로 끄려고 하면 장작불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선미 기자, ssmi70@naver.com
출처:http://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article/mess_main.asp?P_Index=61422
불을 억지로 끄려고 하면 장작불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아야

80년대를 풍미했던 조용필의 노래 ‘촛불’은 ‘왜’ 촛불을 켰는지에 대해서 연달아 묻고 있어, 지금의 시국에 대한 예지가요만 같다.
우리 역사 사상 시위에 초·중생이 가담한 적도 있었던가?
남녀노소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이유는 분명 미친 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도 국민을 잘 살게 해 주겠노라 던 대통령의 백일잔치는 촛불잔치가 되었는가.
촛불을 밝히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같다. 우리 민족에게 촛불은 차세대의 미래를 위해서 캄캄한 밤을 밝히는 절망 속의 빛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가장 연장자가 대표로 후미진 곳마다 불을 밝히고 액운은 물리게 하고, 행운을 불러들이는 매개체로 삼아왔다.
그런데 그 영혼을 밝히는 심지였던 촛불을 차세대들까지 합류하여 거리에 나왔다. 이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참여로 매우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건 민중의 울부짖음이고, 분노의 표출이다. 그 촛불을 든 가슴마다 이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묵묵히 견뎌내기에 감당하기 몹시 뜨거운 불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들 나름대로…….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인수하는 기간부터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일정 부분의 물가에 대해선 세계 유가 폭등으로 나라님도 어쩔 수 없겠지만 기성세대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어졌고,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의 사정도 매우 절박해 졌다.
또 모든 교육의 교육비는 대들보가 흔들릴 지경인데, ‘영어몰입’이니, ‘초등학교부터 상대평가’니 하는 나라의 대표가 한 마디씩 던지는 교육정책은 부모와 어린이, 청소년들의 어려움을 더욱 부채질 했다. 그래서 초등학생들까지 ‘대통령’이라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풍토가 되고 말았다.
예로부터 민중은 메이저리그 층이 아니고, 마이너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들은 대부분 천대받고, 멸시받았다. 그들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있으면서도 비주류로 존재했다.
민중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요구한다. 이것마저도 결여될 때, 그들은 횃불을 들었고, 깃발을 흔들었다.
어떤 영화에서 소시민들 괴롭히는 범죄자를 ‘공공의 적’이라하며, 전개해 나간다. 그 영화에서는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못 가진 자에게 큰 소리 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많이 가진 것이 죄가 아니듯, 가지지 못한 것도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8년 대한민국에 가진 자 보다는 못 가진 자가 훨씬 많다. 가진 것을 자랑삼아 큰 소리 치며 내각을 구성할 분위기는 아직 아니다.
광우병 소고기가 수입되는 것이 촛불시위의 전적인 원인이 아니다. 이런 민심도 읽지 못하는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잘 살게 해 주겠다고 해 놓고, 누구나가 손쉽게 먹을 수 있었던 김밥 값 마저 50%정도 인상되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잘 살기는 커녕 배고파 죽겠다. 온 거리가 붉은 조끼 입은 사람들도 가득하다. 밤이면 촛불을 밝힌다.
그래도 남색과 쪽빛이 하나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성질이듯 우리는 하나다. 이제 촛불을 든 사람도,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이씨도, 권씨도, 정부도 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다.
조용필의 ‘촛불’은 연약한 마음을 말 할 곳이 없어서 촛불을 켰다고 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밤거리의 촛불도 연약한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연약한 마음은 표현됨으로 강해질 수 있다.
촛불을 든 사람도, 이 불빛을 멀리서 가까이서 바라보는 사람도, 집단의 힘으로 억지로 바꾸려 하면 더욱 위태로워짐을 알아야 하고, 필력이 있거나 인기가 있다고 하여 불을 억지로 끄려고 하면 장작불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선미 기자, ssmi70@naver.com
출처:http://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article/mess_main.asp?P_Index=6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