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Cho Yongpil Fanclub Mizi

뉴스

신문사  
기사 날짜  

<오랜만입니다>

“이 시대 최고 가객은 조용필… 요즘 아리랑 창작 재미에 푹∼”

▲ 젊은 시절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꿈꾸다 국민 작곡가가 된 김희갑(왼쪽)씨가 평생의 동반자인 작사가 양인자씨와 함께 경기 용인시 기흥 자택 작업실에서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용인 =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향토색 짙은 서정시인 국민가요 ‘향수’와 영혼을 울리는 산문적 운율의 명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창작한 국민작곡가 김희갑(75)씨를 찾아가는 길은 눈길로 몹시 미끄러웠다. 서울 북한산 기슭 종로구 구기동에서 3년 전 경기 성남 분당으로 이사간 데 이어 지난해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중동으로 옮겨왔다. 남편 김씨와 ‘부창부수’로 활동하고 있는 작사가 양인자(65)씨는 “기흥마저 소란스럽게 느껴져 더 남쪽인 문막으로 이사할 궁리를 했더니 후배들이 서울에서 자꾸 멀어지면 ‘더 이상 용서가 안된다’고 엄포를 놓아 망설이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지난 12월27일,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걸려 도착한 기흥 자택에서 만난 부부는 “시내에 자주 들어가면 도로 사정이 답답해 빨리 나오고 싶어진다”며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요즘은 아리랑 창작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고 운을 뗐다.

대중가요와 클래식, 뮤지컬, 영화음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명곡을 만들어내는 등 무려 3000여곡을 창작한 대중음악계의 거목.‘세시봉’ 멤버인 조영남, 송창식 외에 조용필, 패티김, 이미자, 남진, 나훈아 등과 교류하며 곡을 건넨 김희갑씨는 자택에서도 트레이드마크인 검정 가죽 모자를 쓴 채로 인터뷰에 응했다. 문득 칠순의 나이에도 샘솟는 창작력을 발휘하는 비결이 혹 ‘악상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의 모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김씨는 “고교 졸업 무렵 미8군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기 위해 짧은 머리를 감추려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쓰게 된 뒤로 어느새 50여년간 모자를 쓰게 됐다”고 회상했다.

피아노와 기타가 있는 작업실 창문 너머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모자 쓴 ‘자유인’ 김씨가 기타를 잡고 포즈를 취하니 ‘칠순의 청년’처럼 보였다. 보통 기타보다 크기가 작은 ‘맵시 있는’ 오스트리아산 수제 기타였다. 기타는 평생 그의 곁을 지킨 동반자였다. 그가 작곡가로 본격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작곡을 하려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었어요. 미8군 무대에서 나와서 1977년 5인조 김희갑악단을 새로 조직하게 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편곡을 해야 했는데 작곡 이론 공부가 전혀 안돼 있어, 그때부터 음악이론을 배우게 됐어요.”

이후 김씨는 김희갑악단을 이끌며 300여편의 영화음악을 창작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그의 꿈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대중가요 작곡가로서의 길을 밟게 된 것은 당대 최고 작곡가인 고 박춘석씨와 오아시스 레코드 손진석 사장의 영향이 컸다.

“박 선생님의 레코드 음반을 만드는 데 기타연주자로서 참여했는데 평가가 괜찮았어요. 그때부터 유명 작곡가들과 레코드사 사장들이 녹음 부탁 의뢰를 해 당시 기타연주 녹음의 70∼80%를 ‘김희갑악단’이 도맡게 됐어요. 녹음 비용은, 3시간 30분에 요즘 돈으로 40만∼50만원이었는데 용돈으로 재미가 쏠쏠했어요.”

손진석 사장은 연주 때마다 와서 술을 사주며 편곡 외에 대중가요 작곡도 해달라며 김씨에게 매달렸다. 김씨는 고교졸업 후 10년여 만인 1967년 오아시스에서 태원의 ‘사랑아 내 사랑아’라는 첫 앨범 타이틀을 발표하면서 가요 작곡가로서 화려한 데뷔식을 치렀다. “당시 첫 앨범에 들어있던 곡이 여럿 히트했지요.‘월요일을 맨발로’ ‘불타는 연가’ 같은 곡들인데 지금도 애창되고 있어요. 그때부터 레코드사에서 노래 주문이 쇄도했어요.”

김씨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는 순수한 우리말로 이뤄진 시로, 워낙 이해하기가 쉽지만 노래 만들기는 너무나 어려운 가사였다”고 토로했다.

“작곡하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동원씨가 향수 시집을 가져왔지요. 납북시인 정지용의 시가 1987년 해금되자마자 이씨가 저를 찾아와 ‘테너 박인수 교수와 둘이 함께 부르고 싶다, 작곡 좀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두 분에게 맞게끔 노래를 만들어 보자고 해 수개월에 걸친 산고 끝에 마침내 곡을 내놓게 됐지요.”

김씨는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가객으로 조용필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창력이 가장 뛰어난 우리 시대 가수 한 명을 꼽는다면 단연 조용필입니다. 그는 제가 작곡한 노래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냈기 때문이죠. 솔직히 작곡가로서는 조용필 같은 가수가 좋을 수밖에 없지요. 조용필은 판소리 전문교육을 받아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데다, 발성이 자신의 원래 소리를 배로 울려 내는 ‘본성’과 ‘탁성’등을 자유자재로 오갑니다. 더구나 작곡과 연주에도 뛰어나 곡 이해력이 빨라 연습을 안 해도 악보를 보기만 하면 작곡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번에 알아채는 능력이 있습니다. ”

질문은 양인자씨에게로 이어졌다. 조용필의 히트곡 중‘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부창부수로 탄생했다.

“문학공부를 하다 보면 단상을 남긴 노트가 여러 권 생기죠. 1985년에 김 선생님(남편을 여전히 ‘선생님’이라 불렀다) 하고 작업하면서 이렇게 하소연을 했어요.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면 기승전결의 긴 스토리가 있는데 노래가사를 만들려고 악보를 받아보면 ‘내가 슬펐어, 울었어, 그래서 돌아섰어’ 정도로 맴돌면서 얘기가 끝나버려요. 뭔가 깊은 사연, 속 시원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내레이션을 얼마든지 길게 할 수 있으니 한번 해보라며 악보를 건네줬어요.”

당시 양씨는 가수 옥희한테 준 ‘인생의 정답’ 가사를 떠올렸다. ‘인생의 정답2’를 써보자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양씨는 이 노트 저 노트 뒤적이다 대학노트 한 구절을 발견했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을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당시 대학 1학년 때 되는 것도 없고, 이뤄놓은 것도 없을 때 끄적거린 단상이었어요. 그 나이 때면 자신의 삶이 빈 껍데기 같기도 해 삶에 대한 변명 같은 것도 하고 싶고, 한편으로 오기 같은 것도 생길 때죠. 당시의 구절에 살을 붙여 젊은 날의 초상을 정리한 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어요.”

김씨는 “조용필에게는 10곡 정도 건네줬는데 방송에 가끔 한번씩 나와도 대부분의 노래를 히트시켰다”고 말했다. 술에 관한 한 젊은 시절 조용필과 더불어 두주불사형이었다.

김씨는 “술 마시고 밤에 들어와 작곡을 하면 ‘정말 내가 이렇게 곡을 잘 쓸 수 있나’하고 만족해서 잠을 청하는데, 다음날 일어나서 곡을 보면 어김없이 기분이 엉망이 된다”며 “술 한잔 걸친 기분에 취해 사고가 냉철해지지 못해 그렇다”고 웃었다.

노부부는 김추자씨의 노래인생 40년을 기념한 컴백무대에 올릴 곡과 노랫말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해 연말까지 곡을 완성해 올해부터 녹음 연습에 들어가 3월쯤 음반을 낼 예정이다.

“곡 하나 내는 데 1년 정도 걸립니다. 빨리빨리 곡을 못 만드는 성격이라 성질 급한 가수들은 다 떠나가고 말죠.”(양인자)

부부의 얘기를 듣다보니 ‘세시봉’의 산파역인 음악감독 이백천씨가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이씨는 “요즘 신세대 가수들의 음악에는 통기타가수들에게서 볼 수 있던 혼의 빛깔이 사라졌다”고 기자에게 토로한 바 있다.

“요즘 신세대는 노래의 문법이 달라졌습니다. 1960년대 어른들도 젊은이들의 음악이 어느 정도 새로운 흐름이라고 생각은 했겠지만 지금처럼 큰 격차를 느끼지는 않았을 겁니다. 요즘 젊은 가수들을 보면, 춤부터 추잖아요. 숨이 차서 노래가 제대로 될까 하는 생각부터 들어요. 노래의 문법이 달라졌어요. 가사도 그렇고, 들려주는 방법도, 노래의 문법이 달라졌습니다. 음악형식도 달라졌어요. 통기타 세대 음악, 그 영혼의 빛깔을 그 옛날 사람들의 잣대로 잴 수 없었듯이 요즘 젊은이들의 장점을 과거 세대의 잣대로 재는 것은 옳지 않아요.”(양인자)

“요즘 젊은이들은 리듬감이 상당히 빨라졌어요. 박자를 세분화해서 노래합니다. 또 소리보다 리듬이 더 강해졌습니다. 문제는 방송 매체가 한 분야에 치중해서 대중에게 들려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 음악에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패션이 바뀌듯 노래 문법이 바뀐 것이죠. 같은 발라드라 하더라도 요즘 젊은이들 몸에 맞는 변형된 발라드 말입니다.”(김희갑)

―최근 새로운 형식의 아리랑을 만드셨다는데 반응은.

“판소리 가수 유지나씨의 제의로 ‘나도아리랑’을 만들어 지난 12월23일 라이브공연을 했어요. 초연 무대 치고는 그런대로 평가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레코딩할 때까지 계속해서 다듬어나가는 중입니다. 판소리를 대중가요와 접목하는 작업입니다. ”

아리랑은 ‘한의 노래’라며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 브랜드로는 2%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씨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리랑에 한만 있는 게 아니죠. ‘날좀 보소, 날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아리랑에는 경쾌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 번만 들어도 안 잊힐 정도로 그 의미가 친숙하게 와닿아 미국인들은 우리 아리랑을 찬송가로도 쓴다지요. 속도감 있는 뮤지컬 분야와 접목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아리랑 역시 불러서 재미가 있고 부르고 싶어져야 합니다.”

김씨는 젊은 후배들에게 “우리 가락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황병기씨는 우리 관악기를 서양화하는 것에 있어서 선구자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음악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10곡 중 1곡 정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얼이 섞인 그런 선율이라든가 가락이 포함된 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정충신 문화부장 csjung@munhwa.com

출처: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1010101033630026002
번호 제목 신문사 기사 날짜 조회 수
1813 [동아일보 2011-04-05] [스타, 그때의 오늘] 톱스타도 긴장하는 잠실구장 file     5364
1812 [연합뉴스 2011-04-05] "이번 공연은 게리 무어가 남긴 선물" file     5374
1811 [연합뉴스 2011-04-05] '조용필과 위대한탄생' 최희선 file     5832
1810 [조선일보 2011-04-05] 歌王의 고백_60代 들어 첫 전국 순회공연 나서는 조용필 file     5346
1809 [유니온프레스 2011-03-24] 한국대표기타리스트 12인 게리무어 헌정공연 연다 file     5328
1808 [충청 타임즈 2011-03-21] '살아있는 전설' 조용필이 온다 file     5372
1807 [kandera - ‎2011-03-21]‎ チョー・ヨンピル、5月から全国ツアー開催     5384
1806 [스포츠조선 2011-03-21] '살아있는 전설' 조용필, 전국투어 콘서트 나선다. 5월 7일 서울에서 스타트 file     5419
1805 [경향신문 2011-03-17] ‘가왕’ 조용필, 공연 투어 제목은 ‘1박2일’화제곡 ‘바람의 노래’! 이문세도 장기 공연 돌입!     5450
1804 [데일리안 2011-03-17] ‘나는 가왕이다’ 조용필, 2011 전국투어 기지개 켠다     5306
1803 [아주경제 2011.02.24] "조용필에서 서태지, 빅뱅까지" 대중가요, 교과서에 실린다     5409
1802 [부산일보 2011-02-24]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수? 20대 60% "누군지 몰라"     5426
1801 [인터넷 신문고 2011-02-12] '조용필-배용준-카라'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     5369
1800 [동아일보 연예 2011-01-28] [스타, 그때 이런 일이] ‘영원한 오빠’ 조용필 결혼 발표     5401
1799 [TV리포트 2011-01-27] ’대마초 가수 조용필’ 구원 투수로 나선 청와대 출입기자     5483
1798 [동아일보 2011-01-21] [스타, 그때 이런 일이] 원조 한류가수 조용필, 일본투어 ‘위대한 시작’     5420
1797 [TV리포트 2011-01-20] 김희갑 "'타타타'는 원래 조용필 곡이었다"     5374
» [문화일보 2010-12-31] <오랜만입니다>“이 시대 최고 가객은 조용필… 요즘 아리랑 창작 재미에 푹∼”     5407
1795 [이투뉴스 2010-12-25] 조용필 매니저하며 가수 꿈 이룬 트롯천재 강성구     5423
1794 [동아일보 2010-12-18] [스타, 그때 이런 일이] ‘킬리만자로…’ 부른 조용필, 탄자니아서 감사패     5355

공식 미지 트위터

뉴스 - News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수익금 '음악역 1939' 전달식 (왼쪽부터 조폐공사 류진열 사업 이사, 김성기 가평군수, 음악역 1939 송홍섭 대표) [음악역 1939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국조폐공사가 제작한 '가왕'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판...

뉴스 - News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한국조폐공사(사장 조용만)가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음악영재 지원 사업에 후원한다.   공사는 11일 경기도 가평 뮤질빌리지 '음악역 1939'에서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가운데 2500만원을 가평군과 함께 가평뮤직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