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게시판
* 이정표(里程標) - 길 가장자리에 이정(里程)을 적어 세워놓은 푯말이나 표석.
내가 음악을 하고 노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 날 내가 두번째 길을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두번이 아니라 사실은 세번 네번
아니 수십번이나 이 세상에서 미아가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고 또 잃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늘 길을 조심하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한 발자욱만 틀려도 우리는 서로
딴 곳으로 헤어진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낯선 길은 언제나 절 유혹했고
그때마다 작은 소년은 미아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서 걸어왔고 이제 여기까지 왔습니다
- 조용필 '나의 길' 중에서
인생은 '길'이다.
사람에 따라 가는 길도 다르고 그 거리 또한 다르다.
그 머나먼 여정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편한 길을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음악으로만 오직 한 길
바로 '조용필'의 길이다.
그는 이번에 넓은 신작로를 마다하고,
아예 없는 길을 만들어서 나아가고 있었다.
사실 한국 음악의 길은 상당 부분
그가 만들어온 길이다.
한국에서 '콘서트'라는 길을 처음 닦은 사람도 그가 아니던가.
이제는 좀 쉬거나 편하게 가도 되련만
칼자루 하나 들고 정글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생명'에서 불었던 바람은
단순히 대형 선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닐 것이다.
함부로 평하는...
모르면서 씨부리는...
그런 못된 바람은 아니였을까?
일부 객석이 최대 10만원의 투자로
80년대의 영광을 추억하게 해달라며 투덜거리는 그 순간에도-
아니 86년 이후 일체의 연말 시상을 거부하고 콘서트로 돌아선 순간부터
그는 편한 길 내버린 '이 시대의 진정한 야인'이 아니던가.
TV에 나오지 않으니 한물간 가수로 취급하던 그들이
어느날 문득 조용필이 보고 싶어 십수년만에 그를 찾으면서
80년대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다.
34년 음악 외길에서 조용필은 항상 그들과 동행하고자 했으나
그들이 조용필을 외면했다면 심한 과장일까?
그 와중에도 그는 묵묵히 정글과 사막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교차로'에서 다시 만난 그들에게 이런 메세지를 던진다.
"남은 길도 여러분과 동행하는 조용필이 되겠습니다."
저 미로는 바로 그러한 아픔을 지닌 그의 '인생'이다.
한국 콘서트사에 전혀 다른 형태의 크나큰 '이정표'를 또 하나 세우고
그는 '나를 따르라'며 또 먼길을 떠났다.
"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음악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두운 밤 길을 때로는 태양 가득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의 길은 여러분이 있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은 길도 여러분과 '동행'하는 조용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용필-
"가리라 나는 가리라 그대 서 있는 저기 저편에 언제나 힘이 들어도 머나먼 그 곳에...
가슴 시린 모습을 지켜보는 빛이여 태양의 눈이 되어 지켜줄 순 없는가"
(신곡 '태양의 눈' 중에서)
이것이 그가 '우리 팬'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였을까?
그의 음악 외길에 태양의 눈이 되어 자신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내가 음악을 하고 노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 날 내가 두번째 길을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두번이 아니라 사실은 세번 네번
아니 수십번이나 이 세상에서 미아가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고 또 잃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늘 길을 조심하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한 발자욱만 틀려도 우리는 서로
딴 곳으로 헤어진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낯선 길은 언제나 절 유혹했고
그때마다 작은 소년은 미아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서 걸어왔고 이제 여기까지 왔습니다
- 조용필 '나의 길' 중에서
인생은 '길'이다.
사람에 따라 가는 길도 다르고 그 거리 또한 다르다.
그 머나먼 여정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편한 길을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음악으로만 오직 한 길
바로 '조용필'의 길이다.
그는 이번에 넓은 신작로를 마다하고,
아예 없는 길을 만들어서 나아가고 있었다.
사실 한국 음악의 길은 상당 부분
그가 만들어온 길이다.
한국에서 '콘서트'라는 길을 처음 닦은 사람도 그가 아니던가.
이제는 좀 쉬거나 편하게 가도 되련만
칼자루 하나 들고 정글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생명'에서 불었던 바람은
단순히 대형 선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닐 것이다.
함부로 평하는...
모르면서 씨부리는...
그런 못된 바람은 아니였을까?
일부 객석이 최대 10만원의 투자로
80년대의 영광을 추억하게 해달라며 투덜거리는 그 순간에도-
아니 86년 이후 일체의 연말 시상을 거부하고 콘서트로 돌아선 순간부터
그는 편한 길 내버린 '이 시대의 진정한 야인'이 아니던가.
TV에 나오지 않으니 한물간 가수로 취급하던 그들이
어느날 문득 조용필이 보고 싶어 십수년만에 그를 찾으면서
80년대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다.
34년 음악 외길에서 조용필은 항상 그들과 동행하고자 했으나
그들이 조용필을 외면했다면 심한 과장일까?
그 와중에도 그는 묵묵히 정글과 사막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교차로'에서 다시 만난 그들에게 이런 메세지를 던진다.
"남은 길도 여러분과 동행하는 조용필이 되겠습니다."
저 미로는 바로 그러한 아픔을 지닌 그의 '인생'이다.
한국 콘서트사에 전혀 다른 형태의 크나큰 '이정표'를 또 하나 세우고
그는 '나를 따르라'며 또 먼길을 떠났다.
"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음악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두운 밤 길을 때로는 태양 가득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의 길은 여러분이 있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은 길도 여러분과 '동행'하는 조용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용필-
"가리라 나는 가리라 그대 서 있는 저기 저편에 언제나 힘이 들어도 머나먼 그 곳에...
가슴 시린 모습을 지켜보는 빛이여 태양의 눈이 되어 지켜줄 순 없는가"
(신곡 '태양의 눈' 중에서)
이것이 그가 '우리 팬'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였을까?
그의 음악 외길에 태양의 눈이 되어 자신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4 댓글
하얀모래
2002-12-18 20:18:43
▦여우
2002-12-18 21:20:34
찌기
2002-12-19 09:54:55
찌기
2002-12-19 09:5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