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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완성시킨 한국대중음악계 ‘지존’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57)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 ‘못 찾겠다 꾀꼬리’가 실린, 1982년 발매된 조용필 4집 앨범 앞면과 뒷면.(아래)
  
더러는 한 사람의 가수가 한 시대를 표상한다.

그 점에서 조용필은 1980년대와 한 몸이고 한 짝이다.

조용필을 정의하는 데 흔히 달라붙는

‘가왕(歌王)’ ‘국민가수’ ‘슈퍼스타’ ‘오빠부대의 원조’ 등

최상급의 수식어들도 1980년대라는 시대를 결여해서는

‘용을 그리는 데 눈을 그려 넣지 않은 것’과 같아질 뿐이다.

그건 대중음악계를 정의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조용필을 빼고는 1980년대의 대중음악을 얘기할 수 없다.

1968년 음악계에 뛰어들어 1971년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서 가수왕상을 받는 등

촉망받는 뮤지션으로 성장했고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돌풍을 일으켰으나

일장춘몽처럼 대마초 문제로 발이 묶여 기약 없는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는 얘기는

중언부언일 테니 생략하자.

그렇지만 1970년대의 마지막 3년의 시간이 자양분 혹은 쓰디쓴 보약이 되어

그를 단련시켰다는 점은 기억해두자.

그가 민요와 창에 관심을 갖고 목을 수련했다는 얘기는 하나의 사족일 테고.

1979년 말 대마초 연예인에 대한 해금조처로 자유를 얻은 조용필은

1980년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를 담은 데뷔작을 지구레코드에서 내놓았다.

‘이미 독집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왜 그 음반이 데뷔 음반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

‘지구레코드에서는 자기 회사에서 취입한 걸 기준으로 셈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이 음반의 경우 조용필의 얼굴을 사실상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알린 음반이 되었으니

이를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야구로 치면 연속타자 홈런이었다.

그냥 홈런이 아니라 대형 장외홈런이었다.

이 음반이 밀리언셀링을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데에는

여러 층을 동시에 공략하기 위한 포석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한데 모은 수록곡 구성을 빼놓을 수 없다.

민요 ‘한오백년’처럼 가장 긴 뿌리를 가진 전통적 감성을 건드리는 곡은 물론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잊혀진 사랑’처럼 트로트와 그룹 사운드 음악을 결합해

청년층과 중장년층을 아우르는 곡도 담겨 있었다.

또 기성의 격조 있는 서정적 가요의 감성과 긴밀히 조응하는 곡으로

애절한 발라드 ‘창밖의 여자’가 음반의 들머리에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10대와 20대 수용자가 갈구하던 젊은 감성을 적확히 꿰뚫는 곡으로

뿅뿅거리는 신시사이저와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노래가 흥겨운 댄스곡

‘단발머리’가 엘피 뒷면의 타이틀곡으로 올라 있었다.

이와 같이 한 장의 음반에 여러 세대와 층을 겨냥한 곡들을 수록하는 전략은

후속 음반들에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드라마 주제가로는 ‘축복(촛불)’ ‘물망초’ 등이, 민요로는 ‘간양록’ ‘강원도 아리랑’ 등이,

트로트 스타일의 성인 취향으로는 ‘외로워 마세요’ ‘미워 미워 미워’ 등이,

청(소)년 세대에게 소구하는 곡으로는 ‘고추잠자리’, ‘자존심’ 등이 뒤를 이었다.

일거양득이란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이런 다면전략을 통해

조용필은 거의 모든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슈퍼스타이자 지존으로 우뚝 섰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엔터테이너로서 가수’의 역할뿐 아니라

‘밴드의 리더로서 로커’의 길도 병행했다.

포지션별로 최고의 연주자들로 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해 방송과 라이브 공연에 섰던 점은

오늘날 그의 쉼 없는 공연 활동을 예시하는 것으로 좀더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위대한 탄생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고추잠자리’ ‘못 찾겠다 꾀꼬리’ ‘자존심’ 같은 한국적 감성의 록 명곡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시 지금 조용필의 1980년대 히트곡들이 선율로만 남아 있다면,

반드시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이 마모한 변화무쌍한 밴드 음악이 생생하게 살아올 테니까.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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